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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13 / 윤후명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5. 12. 05:20

대관령 13 / 윤후명

 

남대천 둑방길 밑 납작한 함석지붕

도롱이집이라 부르겠네

삿갓 하나로 몸을 가리고

예전 단오장 가듯 둑방길을 가겠네

대관령에서 남대천 흘러내려

바다로 가는 길

나도 그 길 따라 바다로 가겠네

도롱이는 비에 젖어 세상일 궂다 해도

나는 바다에 이르러 궂은 일 없다 하겠네

머나먼 세월 지나 둑방길에 오르니

남대천에 비친 대관령 다시 보이고

나 태어나 이제야 나를 찾네

오랜 눈길로 내 지난날을 찾아가

남대천의 대관령을 다시 보는 도롱이집

-윤후명(1946~2025)

 

강릉에서 태어난 시인은 고향을 찾아간다. 고향에는 몸을 바닥에 바짝 대고 엎드린 듯한 옛집들이 있다. 거기서 시인은 고향집을 바로 눈앞에서 보듯이 떠올렸으리라. 시인은 둑방길을 따라 걸으며 단오장 가던 때를 회상하고, 바다로 가는 길도 걸어보았을 것이다. 한쪽은 과거 풍속에 닿는 길이요, 한쪽은 푸른 꿈이 출렁이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둑방길을 걸으며 시인은 삶에 수시로 닥치는 언짢고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덧 연만한 시인은 고향에 이르러 ‘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것을 남대천의 흐르는 물에 대관령이 비치는 것으로 빗대어 표현한다.

소설가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시인의 운명을 타고나기도 한 윤후명 시인의 시에는 고향 강릉의 자연과 서사가 곧잘 등장한다. 그 고향은 시인으로 하여금 “감자꽃빛 새벽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라고 노래하게 하거나, 어머니가 그릇에 밥을 푸는 모습을 보며 “산그늘을 먼저 밑바닥에/ 눌러 담는다”라고 빼어나게 노래하게 했다.

 [조선일보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