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의 시간

수평의 힘 / 안정숙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4. 22. 11:42

수평의 힘 / 안정숙

 

풍경을 펼쳐놓고

안쪽과 바깥쪽을 짐작하면

밀거나 당기는 힘이 미래가 된다 

 

허리에 공구 벨트 맨 그가 사다리에 올라서면

새로 들어설 커피숍이

거미줄같이 가상의 선으로 연결된다

창문 너머까지 이어지는 빛처럼

 

내부를 위해 바깥을 세워 가는 동안

바깥이 내부의 마음을 쉼 없이 기웃거린다

 

서녘의 공중에 타카를 박는다 

탁탁 어스름 속에서 낯선 별이 되고

그것이 모여 별자리를 만들고

벽은 나무의 온화한 질감을 닮아간다

 

눈금이 벽면 둘레를 수정할 때

그는 이미 마감재 작업이 진행 중인데

 

선풍기 회전 방향 따라 흩어지는 잡념들 

집기들이 배치될 공간에 수직의 꿈을 잰다

 

지친다는 말을 하면 비스듬해진다

 

가끔 사다리가 휘청거릴 때는 

몇 톤의 업을 두른 것처럼 몸이 뻣뻣하다

어깨는 자투리만 한 내일의 각도를 재고

생활은 어긋날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고

 

자석 수평계 위치 0점에서 생각은 고르고 판판하다

그에게 일탈이란 

나무판자가 스스로 휘어지는 것뿐

거리의 조도가 점점 줄어든다

 

전동드라이버가 겉돌던 꿈을 완벽하게 조인다

벽에 세워 둔 유칼립투스 목재도

제 순서라는 듯 움직거리는데

 

단단하게 박은 하루가 저물어간다

 

가게 안을 둘러보는 사내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유리문에 비친 자신과 수평을 이룬다 

 

안정숙의 「수평의 힘」은 물리적인 건축의 행위를 통해 삶과 내면의 균형을 탐색하는 매우 섬세하고 깊이 있는 시입니다. 이 시는 노동, 일상성, 정신의 수평 유지, 그리고 삶의 자세에 대해 성찰적으로 사유합니다. 아래에서 시의 주요 이미지와 주제들을 하나씩 짚어볼게요.


1. “풍경을 펼쳐놓고 / 안쪽과 바깥쪽을 짐작하면 / 밀거나 당기는 힘이 미래가 된다”

  • 이 구절은 시 전체의 출발점이자 은유의 초석입니다.
  • 바깥(환경)과 안쪽(내면/공간)을 가늠하며 이루어지는 행위 — 그것은 단순히 건축이 아니라, 삶을 조율하는 방식이에요.
  • "밀거나 당기는 힘"은 물리적인 작업인 동시에 관계와 감정의 힘이기도 하며, 이 모든 힘이 미래를 구성한다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2. “허리에 공구 벨트 맨 그가 사다리에 올라서면 / 새로 들어설 커피숍이 / 거미줄같이 가상의 선으로 연결된다”

  • 여기서 ‘그’는 직업인, 혹은 시인이 투영된 ‘노동자’입니다.
  • 건축물의 완성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미리 연결되는 선들이 존재합니다.
  • 이는 보이지 않는 노력, 구조의 상상력, 혹은 내면의 건축 행위로 볼 수 있어요.

3. “서녘의 공중에 타카를 박는다 / 탁탁 어스름 속에서 낯선 별이 되고 / 그것이 모여 별자리를 만들고”

  • 시인이 건축 노동을 통해 우주적인 감각으로 확장시킵니다.
  • “타카”의 박음질은 단순한 고정이 아닌, 저녁 하늘에 별자리를 그리는 창조행위로 승화됩니다.
  • 노동은 세상의 일부를 구성하는 일이자, 신성한 창조의 연속이기도 해요.

 4. “자석 수평계 위치 0점에서 생각은 고르고 판판하다”

  • 이 문장은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은유입니다.
  • 수평계의 0점, 그것은 균형의 상태, 삶의 중립점, 명료한 정신 상태를 상징합니다.
  • ‘그’는 단순히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도 함께 수평 맞추는 중입니다.

 5. “그에게 일탈이란 / 나무판자가 스스로 휘어지는 것뿐”

  • 이 구절은 시인의 일탈에 대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 불균형, 탈선, 감정의 파동조차도 작은 뒤틀림 정도로 받아들이는 평정심.
  • 나무처럼 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며, 삶 역시 그런 유연성을 갖는다는 인식.

 6. 마지막 행: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 유리문에 비친 자신과 수평을 이룬다”

  • 시의 클라이맥스이자 결말.
  • 그는 이제 외부(유리문에 비친 자신)와 내부(자신의 눈동자) 사이에 완벽한 수평을 이룹니다.
  • 이건 단순한 작업의 완성이 아니라, 내면과 외면의 일치, 노동과 존재의 조화, 그리고 자기 삶에 대한 자각의 순간이에요.

 정리: 시의 주제와 핵심 이미지

요소의미
건축 노동 일상적이지만 철학적인 삶의 수행
수평계/0점 균형, 평정, 중심점
사다리, 드라이버, 마감재 치밀한 작업의 구체성, 삶을 구성하는 디테일
휘청거림 불안정성, 그러나 버텨내는 힘
별자리, 유칼립투스, 잡념 감성적 장식, 혹은 존재의 시적 장면들
유리문 속의 자신 자각, 자기 점검, 완성된 수평 상태

 이 시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어요:

  • 누군가는 이 시를 한 노동자의 하루라고 읽을 것이고,
  • 누군가는 마음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
  • 또 어떤 이는 시인이 시를 쓰는 구조와 철학에 대한 메타포로 읽을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