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의 시간

러시안 룰렛 하는 밤 / 서안나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4. 22. 11:30

러시안 룰렛 하는 밤 / 서안나

 

난 날마다 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한 게임 하실 까요?

물론 저녁 식사 값은 죽은 사람의 몫이죠.

어때요. 같이 한 번 해보실 래요?

 

방아쇠가 당겨질 때

손가락 끝에 죽음이 담배연기처럼 감겨오죠.

피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아마존 피라니아처럼 단단한 이빨을 빛내며

죽음을 맛보려는 눈초리로 몰려들겠죠.

 

시간의 감옥에 갇힌 내 얼굴 속에

어두운 영혼이 심장박동처럼 뚝딱거려요.

내 안의 피톨들이 뱀처럼 날름거리며

내 몸을 찢고 나오려해요.

죽음이 뱀처럼 차갑게 내 몸 안으로 흘러 들거 예요.

총알소리가 내 생을 스쳐갈 때

난 죽음의 멀티오르가즘을 맛볼테죠.

 

내 머리에 날마다 총을 겨누고

뇌수 속의 게으른 거리를 쏘고

찌그러진 양철 같은 해를 쏘고

들판에 핀 노랑제비꽃의 심장을 관통하고

멸종되지 않는 식물들을 관통시키고

날마다 내가 관통되고

그 너덜거리는 틈새로

새로운 세상이 재빨리 들어서요.

 

죽음이란 거 뭐 별건가요.

난 내일이면 게임 주인공처럼

신성한 영혼과 추억이 채워진 육체로

업그레이드되어 재림할걸요.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거 위대하지 않은가요?

한 방에 한 생이 날아간다는 거

폭죽처럼 터져 버린다는 거 신나잖아요.

총알이 내 머리통과 두개골을 날려버리는 날까지

방아쇠를 당깁니다.

 

어때요. 한 게임 해보실래요?

자 일단 먼저 돈을 내시고

저녁을 미리 주문해두죠.

피가 흐르는 당신 머리처럼

약간 덜 익은 신선한 스테이크와

당신 피처럼 붉은 포도주 한잔을 우아하게 주문할까요.

 

서안나의 시 **「러시안 룰렛 하는 밤」**은 죽음, 삶의 선택, 그리고 자의식의 극단을 다룬 강렬한 작품이에요. 거침없는 언어와 충격적인 이미지로 무장한 이 시는, 삶을 향한 냉소와 동시에 그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담고 있죠. 시 속 화자는 죽음을 단지 두려운 것이라기보다 도박, 쾌락, 심지어 예술적 파괴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러시안 룰렛: 삶과 죽음의 도박

“난 날마다 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죠.”

  • 이 첫 문장은 독자를 단숨에 끌어당겨요. 러시안 룰렛은 무작위적인 생사의 경계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화자가 의도적으로 매일 죽음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나와요.
  • 삶 자체가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유지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죠.

죽음의 쾌락화

“총알소리가 내 생을 스쳐갈 때
난 죽음의 멀티오르가즘을 맛볼테죠.”

  • 여기서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쾌감의 순간, 일종의 절정(클라이맥스)으로 표현돼요.
  • “멀티오르가즘”이라는 표현은 삶과 죽음이 섹슈얼한 감각으로 얽혀 있음을 암시하죠.
  • 죽음과 성의 결합은 종종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며, 극단적 자의식을 드러냅니다.

세상에 대한 폭력적 저항

“찌그러진 양철 같은 해를 쏘고
들판에 핀 노랑제비꽃의 심장을 관통하고”

  • 화자는 단순히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총을 겨눠요. 이것은 세상에 대한 분노, 환멸, 혹은 저항의 감정입니다.
  • ‘양철 같은 해’는 생명의 근원마저 메마르고 조악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죽음 속에 깃든 재탄생의 상상

“그 너덜거리는 틈새로
새로운 세상이 재빨리 들어서요.”

  • 시의 중반부터 화자는 죽음을 종말이 아니라 재탄생의 통로로 이해해요.
  • 자신이 죽음을 통해 '업그레이드되어 재림할 것'이라는 선언은 일종의 자기 창조 신화, 혹은 '파괴를 통한 갱생'의 환상이에요.

마지막 만찬의 블랙 유머

“당신 피처럼 붉은 포도주 한잔을 우아하게 주문할까요.”

  •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식사를 주문하는 장면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도 하고, 죽음을 미학적으로 연출하는 블랙 유머의 극치예요.
  • 피, 스테이크, 포도주—이 모든 상징은 생명과 죽음이 가진 육체성과 감각성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요약 감상

이 시는 단순히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파괴의 충동,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주체적 욕망,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검붉은 유머와 쾌락으로 버무려낸 한 편의 시적 퍼포먼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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