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의 시간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릴까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4. 8. 13:24

[삶의 향기]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릴까

 

이번 겨울이 싱겁다. 눈 때문이다. 몇 차례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고 눈이 오는 듯했지만 서울을 온전히 덮지도, 쌓이지도 못했다. 그래도 눈을 기다리다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새 달력을 사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로 나섰다. 거기서 나는 눈 올 기미가 전혀 없는 인디고빛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과 마주쳤다. 한 보험회사의 대형 글판에 올라온 이용악(1914~71)의 시 '그리움'이었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글판을 보는 순간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내 망막에 새하얗게 퍼지는 온기를 느꼈다. 두고 온 북쪽 작은 마을의 함박눈을 그리는 시인의 질문은 곧, 눈을 기다리다 내가 그 거리에 나온 이유에 대한 물음과 같았다. 해맑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나는 함박눈을 느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은 도처에 있는 카페의 이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검색 사이트는 같은 말로 곧장 샤갈의 특정 그림으로 안내한다. 아동도서의 표지나 미술책에도 마치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는 것처럼 암시한다. 샤갈이 눈 내리는 마을을 그린 것으로 은연중 믿게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샤갈은 눈 내리는 마을을 그린 적도, 그와 같은 제목을 붙인 적도 없다. 이미 눈이 내린 장면을 그린 것이 겨우 있는 정도다. 유독 한국의 독자와 관람자는 샤갈에게서 눈 내리는 마을을 불러들이고 그곳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김춘수의 시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시는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로 시작한다. 시의 제목과 그 시작이 그러한 믿음을 낳게 했고 퍼뜨린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샤갈의 마을은 화가의 고향을 얼핏 암시하는 듯하지만 미술에 종사하는 내가 볼 때 그것은 화가의 매체, 즉 회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비친다. 시인은 3월의 어느 봄날에 화가의 화집을 보면서 눈을 상상했을 뿐이다. 그는 눈이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고 한다. 눈이 부재하는 샤갈의 캔버스에 시인은 눈을 불러들였다. 그의 의식 깊은 곳에서 돋는 기다림이 헤아릴 수 없는 가벼운 것들로 그의 망막을 뒤덮은 것으로 보인다. 김춘수는 곧 닥칠 봄의 절정을 무수히 흩날리는 눈의 속성으로 염원한 것이다.

눈이 내리는 마을을 그린 적 없는 샤갈의 화면에서 김춘수를 자극한 것은 무엇일까? 흔히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로 오해되는 원작은 샤갈의 대표작인 '나와 마을'이다. 시인이 그와 같은 시를 짓게 한 바로 그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초록빛의 ''와 흰 염소가 커다란 얼굴로 마주 보고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친밀한 시선과 서로의 눈동자를 연결하는 실선, 그리고 분할된 면들 속에 그려진 몇몇 에피소드로 암시된다.

 각을 세운 보석에서 발산하는 듯한 형형색색의 면과 면 사이에 샤갈의 실버 화이트는 눈가루처럼 영롱하다. 그림 속 주인공의 새하얀 눈, 그의 백지장 같은 입술, 시인이 올리브빛으로 물들었다는 겨울 열매들도 안개꽃다발처럼 다투어 퍼진다. 이 모든 흰색이 한겨울의 눈을 연상하게 한 것 같다. 샤갈의 흰색은 화면의 내용들을 설명함과 동시에 보는 이의 염원대로 상상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세상의 다양한 수고와 험한 풍경들을 공평하게 덮어 버리는 흰 눈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한다. 펑펑 내리는 눈으로 다음해 농사의 풍년을 점치고 연인들은 첫눈 오는 날 만날 것을 약속한다. 김춘수는 겨울 아닌 3월에 봄의 절정을 기다리며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눈이 내린다고 했다. 많은 이가 그 시를 읽으며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린다고 믿는다. 시인 이용악은 "잉크병 얼어드는" 한밤에 문득 깨어 북쪽 고향에 내릴 함박눈을 불러들인다. 아직 겨울은 남아 있고 나는 내가 원하는 눈이 조만간 나의 눈썹에 얹힐 것을 기다린다. 그때 샤갈이 못 그린 '눈 내리는 마을'을 그릴까 싶다.

전수경 화가

 

전수경 화가의 [삶의 향기] 칼럼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릴까〉**는 시, 회화, 계절, 기억이 아주 촘촘히 엮인 아름다운 산문이에요.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감상하고 해석하면서, 시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현실과 상상, 미술과 문학 사이를 어떻게 오가며 퍼져 나가는지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글의 핵심 내용 정리

1. 눈을 기다리는 감정과 시적 체험

  • 서울의 겨울은 눈이 거의 오지 않지만, 저자는 **광화문에서 글판에 실린 이용악의 시〈그리움〉**을 통해 “눈이 내리는 경험”을 함.
  • 육체적 현실이 아닌, 시를 통해 눈을 체험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어요.

2.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이미지의 기원

  •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은 현실엔 없는 곳이지만, 많은 이가 그곳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샤갈이 실제로 그런 그림을 그렸을 거라 믿는 문화적 착각이 생김.
  • 이는 김춘수의 시 때문이며, 시인은 샤갈의 실제 마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샤갈의 그림 자체 — 회화 속 세계를 마을로 상상한 것.

3. 김춘수 시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확장

  • 3월의 봄날, 시인은 샤갈의 화집을 보며 상상 속 눈을 ‘불러들이는’ 창작 행위를 함.
  • 시의 눈은 단지 계절적 현상이 아니라, 정서와 기억, 기다림의 상징으로 작동함.
  • 김춘수의 시는 결국 샤갈이 그리지 않은 세계를 시로 그려낸 셈.

4. 샤갈 그림과의 연결

  • 실제 샤갈의 대표작 **〈나와 마을〉**이 시인의 상상을 자극했을 가능성 있음.
  • 그림 속 흰색(눈, 입술, 열매 등)은 눈처럼 보이는 요소를 제공했고, 김춘수는 그 흰색에서 눈의 환영을 떠올림.
  • 샤갈의 화풍은 명확한 ‘풍경 묘사’보다는 감정과 기호, 색채로 이끌어지는 상징적 회화이기에, 시적 상상과 궁합이 맞음.

감상의 깊이: 시와 회화, 그리고 기억

이 글은 단순히 ‘시 해석’에 머물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문학을 의미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기억을 환기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조차 실감나게 경험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에세이죠.

또한, 김춘수와 이용악 두 시인의 시가 ‘눈’이라는 자연현상 하나로 정서적 공명을 이루는 지점도 조명해 줍니다.

  • 이용악은 북녘 고향에 내릴 눈을 그리워하고,
  • 김춘수는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의 환상을 눈으로 표현해요.
  • 그리고 화가는 시를 통해 그림 속에 없는 ‘눈 내리는 마을’을 보게 된 자신을 이야기하며 글을 맺죠.

예술적 해석의 아름다움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이 대목일 수 있어요:

“샤갈의 흰색은 화면의 내용들을 설명함과 동시에 보는 이의 염원대로 상상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 예술은 정해진 해석이 아니라, 감상자의 상상력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 시인이 그림에 눈을 얹고, 독자가 시를 마을로 상상하고, 화가는 그 모두를 다시 그림처럼 풀어냅니다.
    이것이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향기 아닐까요?

 마무리

이 글은 하나의 시가 어떻게 문화적 상징, 혹은 집단적 환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훌륭한 기록이자 성찰이에요.
더 나아가 ‘눈’이라는 소재 하나로 기억, 계절, 그리움, 예술을 연결 짓는 섬세한 감성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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