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의 시간

기적의 사과 / 조계선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4. 1. 13:37

기적의 사과 / 조계선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가 있다. 팔년이 지났지만 빛깔의 퇴색도 없다. 만물은 변한다는 진리를 거스르는 것일까. 스케치북 속 빨간 사과 두 알, 폴 세잔이 그린 사과와 닮았다. 덥석 한입 베물면 달콤한 과즙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울 것 같다. 맛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과 교집합을 만든다.

 

 요즘은 기후 온난화로 사과가 전국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오십 여년 전 내 고향인 대구는 사과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진학했다. 스물의 나는 늘 고향이 그리웠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지만 마음은 기차보다 빨랐다. 귀향에 들뜬 친구들의 수다가 잠잠해질 무렵 기찻길 옆으로 길게 늘어선 사과밭이 나타났다. 고향에 들어섰다는 반가운 신호였다. 그 순간의 기억조차도 내가 사과를 좋아하는 이유가 된다.

 

 건강한 먹거리에 진심이었던 남편은 퇴직 후 양평에 농사지을 땅을 장만했다. 밭 주변에 과수를 심고 가운데 푸성귀를 심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그때 신문에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를 만들어 낸 '기무라아키노리'라는 일본사람의 기사가 났다. 십 년 동안 실패를 거듭하다 성공한 사과는 상온에 오래 두어도 마르기만 할 뿐 썩지 않는다고 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결과라 유명세를 탔다. 이웃들은 농약을 쓰지 않고는 사과를 재배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파도에 쏠려도 꼼짝 않는 갯바위 같은 남편은 기어코 사과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 여름에 딸 수 있는 홍로와 가을에 수확하는 부사였다. 무농약과 유기농으로 썩지 않는 사과를 수확할 것이란 굳은 결심을 했지 싶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은 낫으로 베어 퇴비를 만들었다. 봄이 오기 전 숙성된 퇴비를 밭에 뿌리고 삽으로 흙을 수시로 뒤집었다.

 

 그는 누구보다 봄을 기다렸지만 불청객이 먼저 찾아 왔다. 농약을 피해 주변에서 몰려온 벌레들이었다. 얄밉게도 겨우내 추위를 이기고 돋아나는 사과나무의 여린 새싹을 먹어치웠다.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은 싹이 나올 때 농약을 쳐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삼년 퇴비로 지력을 높이면 열매가 달릴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었으리라.

 

 세 번의 봄이 지났다. 막 돋아난 잎은 여전히 벌레들의 차지가 됐다. 주변에 인가가 없는 ‘기무라아키노리’ 씨의 밭에서도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가 나오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 몇 그루되지 않아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남편이 재배한 사과를 맛보리란 기대는 접고 있었다.

 

 사과나무를 심은 후 다섯 번째의 봄이 찾아왔다. 드디어 남편의 고집스런 정성이 통했다. 나무가 벌레를 이겨냈다. 연두빛 새싹이 초록 잎사귀로 자라 햇볕을 받고 열매를 품었다. 가녀린 가지에 힘겹게 달린 풋사과를 솎아내는 것조차 미안했다. 팔월의 따가운 여름 햇살은 홍로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인간승리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참고 견뎌온 시간이 주는 대가였다.

 

 며칠 후 남편은 나무에서 제일 큰 사과 두 알을 따와 내밀었다. 오 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첫 수확이다. 내 주먹보다 작았지만 보석처럼 단단하고 반짝였다. 건강하게 자랐다는 표시다. 비와 바람과 햇볕 그리고 사람의 땀방울이 축전지처럼 응축되어 만들어낸 기적의 사과다. 거칠고 딱딱했던 흙은 팥고물처럼 부드러워졌다. 농약과 화학비료로 쉽게 밭을 일군 이웃들은 부러워했다. 나무는 해마다 조금씩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며 강건해졌으리라. 그 보답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내주었을 거다.

 

 맛이 궁금했지만 먹기가 아까웠다. 어디든 저장하고 싶었다.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두 알의 사과를 그렸다.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키워낸 사람의 정성은 표현할 수 없었다. 심상으로 그려 마음속에 간직할 수밖에. 사과껍질은 단단했지만 속살은 달콤하고 아삭거렸다. 특히 혀에서 느끼고 두뇌의 해석이 더해진 풍미는 아직까지 잊히 지 않는다. 아쉽게도 그런 사과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해 겨울 남편의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병원을 다니느라 나무를 보살피지 못했다. 혼신을 다해 가꾸었던 나무의 열매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가 농사를 짓는 동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방관자였다. 마트에서 사먹으면 될 것을 고된 일을 왜 자초하는지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삼십 년간 체화된 일터를 떠난다는 것은 삶의 지표를 잃은 것과 같았을 터다. 그는 공허해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몰두할 수 있는 일로 농사를 택했으리라. 그것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기에 더욱 집착하지 않았나싶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육년이 지났다. 힘든 농사를 묵묵히 지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속내는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말한 적 없지만 한 가지는 안다. 썩지 않는 건강한 사과를 내게 선물하고 싶었을 테다.

 

 변하지 않는 것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그러나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기억의 사과는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적 없는 사람이 내 마음 안에 완벽한 사과나무를 심었다. 영원히 썩 지도 마르지도 않는 기적의 사과가 달린 나무를.

 

 

 

기적의 사과는 일본의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가 개발한 무농약·무비료 사과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사과 농사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많은 양의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데, 기무라는 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사과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적의 사과가 특별한 이유

  1. 무농약·무비료 재배
    • 사과는 병충해에 매우 약한 과일로, 일반적으로 농약 없이는 재배가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 하지만 기무라는 10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화학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건강한 사과를 길러냈습니다.
  2. 썩지 않는 사과
    • 기무라의 사과는 오래 보관해도 일반 사과처럼 곰팡이가 생기며 썩지 않고, 서서히 마를 뿐입니다.
    • 이는 인위적인 화학 처리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자란 덕분으로 해석됩니다.
  3. 토양의 변화
    • 무농약·무비료 방식으로 재배하면 처음 몇 년간은 나무가 자라지 않거나 병충해로 인해 거의 죽게 됩니다.
    •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토양이 자연적으로 건강해지고, 다양한 미생물과 생태계가 회복되면서 스스로 병해충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 기무라의 사과 농장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건강한 사과나무를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4. 인간 승리의 상징
    • 기무라는 주변의 조롱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10년 만에 기적 같은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 그의 이야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다큐멘터리와 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기적의 사과와 관련된 이야기

  • 기무라 아키노리의 삶과 무농약 사과 농사에 대한 이야기는 **『기적의 사과(奇跡のリンゴ)』**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 그의 도전과 성공은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기적의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끈기,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인간의 노력을 상징하는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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