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구두 / 채길우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3. 18. 15:42
구두 / 채길우
저녁이 되면
우리는 날개를 벗고
천사의 동상에서 내려와
비로소 인간으로 남는다
지상에서 먼저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이의 고단한
맨발을 겨우 한번
움켜보는 밤
몰래 날아갈까봐 이것이
행복이라 말하지 못한 채
흠칫 뒤돌아보면 단칸방 아무도 없는
현관이 저절로 점등되는 이유에 대해
보이지 않아도 여기에 없어도
우리만 아는 비밀에 관한
귀엣말이 열망의 잔상과
부실한 잠꼬대로 빠져나가고 나면
가만히 일어나 흩어진
내일의 깃털과 바람 들을
정리하고 돌아와 누워도 다시
꿈꿀 수 없는 좁다란 곳으로부터
아무 일 아니라는 말처럼
다 기우일 뿐이라는 듯이
이내 빛 꺼진 빈틈을 채우는
익숙하고 편안한 적막과 어둠과 공포 속에서
우리는 뒤척이기도 한다
날개 없는 날갯짓을 배우며
기약 없는 천국보다 낮은 자리에서조차
오직 발 벗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채길우 '측광' 창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