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 피기까지 / 유수연
수련이 피기까지 / 유수연
너한테선 상처를 덮은 밴드 냄새가 난다
가렵지만 뜯어보곤 했다 가만히
잠들어 있는 걸 알면서도
그 속에는 작은 점
같이 누워 결혼에 대해 얘기하던 홍천의 밤하늘
흰 침대보
잔뜩 어지러운 별자리
긁다보면 모든 게 상처였다
흰 이불
얼굴까지 끌어당기고 무성한 머리칼을 만졌다
잠들어 있는 걸 알면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얼굴
사랑도 담요로 덮으면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웃는 소리는 아닌데
눈에 든 멍을 하늘을 가져다 가리고 싶었으나
자꾸 손바닥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는 어떤 자세에 열중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것은 없었다, 이별을
서운한 일이라고 말해줬지 차렷 자세로 누워서 말이야
주머니가 없는 몸이었지만
넣어 갈 수만 있다면
네 마음을 키워 꽃을 피워보고 싶었다
손등에도 그게 있네
나랑 같은 오른손에 그게있어
사실 나 죽을 만큼 힘든적 없었다
사실일 것까지 없는데 나도 그런 적 없다
우리는
불효에 대해 생각하면
서울이 모두 불에 타도
우리는
주먹 꼭 쥔 채 버틸 것이다, 지독하게
우리는
겨울 수감자처럼
서로를 안고 생존하려 했다
그렇지, 사랑보다 고귀한거지
녹일 수는 없어도 죽을 수는 더욱 없으니까
잘 구운 상감청자처럼
내 몸을 초과하는 마음이 너무 많아도
우주는 다 계획이 있다
잎 속에 잎이 있듯
넘쳐날 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수렴할 것이니까
너 없는 지구라도 너 닮은건 너무나 많을 것이고
같이 걸을 길은 자꾸 생겨나겠지
염치없이, 너 없는데도 말이야
홍천의 주일
꽉 움켜줜 것은 무엇이든
손을 펴봐
내 점이야, 왼쪽 눈 밑에 다 붙이고 살아
울음이 그친대
[유수연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창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