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 나희덕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12. 9. 06:39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 나희덕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막다른 기슭에서라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무언가 끝나가고 있다고 느낄 때
산이나 개울이나 강이나 밭이나 수풀이나 섬에
다른 물과 흙이 섞여들기 시작할 때 (중략)
빛이 더이상 빛을 비추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마지막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그래도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무서움의 시작 앞에 눈을 감지는 말았어야 했다
-나희덕 '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부분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일과 그래야만 했던 일 사이에서 삶은 구성된다. 인생이란 순간적인 선택의 연속이고 누구도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선택이 인간을 완성하므로 우리는 선택의 노예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때로 명확하다. 분노해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침묵했던 일,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타인을 외면하는 일이 그렇다. 모두의 무서움은 그렇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비극은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간파하는 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때늦은 말들은 음울한 미래의 커튼을 여는 시작점일 때가 있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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