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屋 -집옥 / 송정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11. 25. 11:35

屋 -집옥 / 송정란

 

중앙선 완행열차 소백 죽령 똬리굴 시름시름 넘어가면,

구덩이마다 소금 세 말씩 들어부은 건장한 대들보가 떠받치던 열두 칸 기와집, 노름빚 술빚에 몰려 튼실하게 출렁이던 골기와 벗겨 팔아먹은, 돌담 안 탱자나무 마른 가시 무성히 돋아 늙은 식솔 쓰린 가슴 남부끄러이 찔러대던, 야반도주 흉흉한 소문 먼지바람 일으키며 안마당 질러가고 쇠문고리 탄식하여 절거덕 홀로 녹슬어가던,

청량리 역 광장 모퉁이 퀴퀴한 누옥 한 채, 빗물 젖은 골판지 아래 잠든 뭄뚱이 누군가 보았다지요
(시조집 ‘象’, 고요아침, 2024)

[시의 눈]
60년대 말 난 청량리 큰댁에 머물렀지요. 말이 집이지 루핑지붕에다 비 샌 틈을 골판지로 덧댄 산동네 거적 누옥이었습니다. 여섯 식구 단칸방에 염치없이 끼여 일년쯤 버텼네요. ‘무던한 놈’이라, 큰아버지 농에도 무덤덤했지요. 노름빚대에 시골집을 넘기고 풍선단 돈을 찾아 이 산동네로 왔는데, 나마저 꼽살이 끼니 눈치를 받을 밖에요. 난 밥값으로 새벽마다 물지게를 지고 산 아래에 가 물을 받아오곤 했지요. 빙판길을 기우뚱거리며 오르다 몸살을 앓고 큰형마저 세상을 떠 그해 대입시를 망쳤습니다. 이후 고향에 와 농사를 거들었지요. 우리집은 초가에 방 두 개, 그 하나를 내가 썼더랬습니다. 아버지가 광으로 쓰던 방을 수리해 공부방으로 해주셨거든요. 그 누옥에서 난 문학과 혁명을 동시에 꿈꾸었습니다. 밤엔 쥐의 운동장이 된 천정을 밀대로 쑤시며 탈출만이 최대 비의(秘意)이듯 벽에 가득가득 시를 써 붙이고 읽었더랬습니다. 쥐오줌 내 나는 가난한 그 방은 형형한 시옥(詩屋)이었던 셈이지요. 송정란 시인은 경북 영주에서 나, 경기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1990년 ‘월간문학’에 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허튼층 쌓기’(2003), 시집 ‘불의 시집’(1994), ‘火木’(1998)을 펴냈습니다. 그는 상징과 비유를 단순 언어기교가 아닌, 대상에의 역사적 반추와 미래적 상상까지 천착하는 그 탐구의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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