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많은 구두 / 이숙경
구멍이 많은 구두 / 이숙경
세상 떠난 주인이 손수 지은 가죽 신
진열장 맨 끝에서 반값으로 짚어주는
철 지난 구두 한 켤레 풀죽은 채 남았다
액자 속 정물같이 살아온 사십여 년
눈에 띄면 아니 될 멋쩍은 숨구멍처럼
발등 위 구멍 밖으로 살길 내고 싶었겠다
케케묵은 발 대신 발품 팔기 잘한 날
두 손 모아 쓰다듬고 바라보는 신발코
밑창 위 당당한 콧대 다 닳도록 우뚝하다
(시조집 ‘가장자리 물억새’, 작가, 2024)
[시의 눈]
집 앞 네거리에 교통신호 제어기가 있는데요. 거기 기대인 작은 합판 건물 안엔 구두 고치는 할아버지가 있었지요. 나도 몇 번 굽을 갈았네요. 옆 꽃가게 아주머니에 의하면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떴다 해요. 난 주인 없는 합판집 틈을 들여다 봅니다. 공들여 수선한 한 켤레 신이 풀죽은 채 녹슨 미싱 옆에 놓여 있군요. 낡은 선풍기 아래 무두질과 칼질, 그리고 망치질을 쉼없이 하던 그 상처투성이의 손이 떠오릅니다. 그가 쓰다듬던 구두코로부터 일으키는 희미한 미소가 갈꽃처럼 꽂혀오는 가을입니다. 브라이언 스미스의 『부자와 구두장이』에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신기료가 부자로부터 금화를 받고서 불행해진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언젠가 난 거스름을 팁으로 주려했지만 한사코 거절하던 그를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나, 행복이란 그냥 오는 게 아님을 배웠군요. 한데, 요즘은 주변에 구둣방이 보이질 않아요. 문득 사람들 발을 봅니다. 허어, 나처럼 다 운동화를 신고 있네요. 편의주의는 가난한 굽과 구멍을 싫어하나 봐요. 이숙경 시인은 전북 익산에서 나 전주교대를 졸업, 교직에 근무하며,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한 이후 시조집 ‘파두’(2009), ‘까막딱따구리’(2020)를 펴냈습니다. 그는 사물의 외관에 나타난 현대인의 단절된 삶에다 자기의 삶을 대입해 그걸 세필화로 내밀히 그려내는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