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열매 / 지성찬
좋은 열매 / 지성찬
필요치 않은 가지는
사정없이 잘라 버리고
수많은 꽃이 피어도
남을 꽃은 살펴 고르네
칼날에
베인 상처가
열매에 비쳐 있네
(시조집 ‘겨울 화석정에 올라’, 문학공원, 2024)
[시의 눈]
한 농부가 장차 과일을 저울질하며 가지치기를 합니다. 꽃 철엔 실한 배꽃만 남기고 ‘사정없이’ 솎아내지요. 풋열매가 열릴 쯤엔 적과(摘果)를 합니다. 실과가 사람 입맛에 맞춰 굵어지고 당도 또한 높아지기를 바라서이겠지요. 인위적 적자생존, 그러니까 튼실한 꽃과 열매에 양분을 집적하게끔 부추겨 이윤을 높이려는 게지요. 태풍의 시련 뒤에 바야흐로 가을, 배 향기가 이랑에 번집니다. 1294년 피렌체의 단테 알리기에리가 『새로운 인생』에서 베아트리체를 잃은 오랜 뒤 언급한바, 사람의 지난 일이란 당분간은 잊혀지기 마련이며 다시 새로운 용기를 솟게 만든다했던가요. 오늘 아침, 난 배구공같이 둥근 배를 깎습니다. 이 배로 말하자면 가차없이 여린 꽃에게 휘두른 그 가윗날을 피해 예까지 왔지요. 결국 인간의 입을 위해 살아남은, 아니 살려진 셈이군요. 한데, 난 위악적 허무에 엄습됩니다. 그 살해된 가지와 꽃, 열매의 혼을 위해 복수라도 하듯 날을 곤두세우고 맙니다. 비록 인플란트 이빨이지만 에라, 한입 크게 베어먹습니다. 우여곡절, 이 식탁에 온 ‘좋은 열매’에 어쩜 객기찬 내 잔인함이라니…, 하면, 갈수록 양양하고 굵어지는 이 탐욕증은 대체 무슨 망발일까요? 지성찬 시인은 충남 충주에서 나,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전국시조백일장 당선, 1980년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서울의 강’(1988), ‘인생의 GPS’(2014) 등을 냈습니다. 그는 정연한 그릇에 사유 또한 반듯하게 담아내어 시조의 위의를 높이는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