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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강좌 / 시의 인문학>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10. 13. 06:55
<토요 강좌 / 시의 인문학>

■ 오늘 토요 강좌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내가 그동안 느꼈던 한국문학에 대한 단상(斷想)이다.
세계 최초의 음반에 실린 명곡인 '카루소'에 얽힌 이야기와 그 감동을 소개한다.

말미에 한강의 시 한 편을 얹는다.


내가 살고 있는 진주의 진주문인협회(회장 김성진_시와편견 편집장)에서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 걸었다. (10월 11일, 아래 사진)
우리나라 최대의 종합예술제가 열리고 있는 '제73주년 개천예술제'와 '진주유등축제' 행사장 곳곳에 축하 현수막을 걸었는데, 우리 문인들의 자긍심과 위상이 한껏 올라가는 분위기를 느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정치 성향이나, 역사의 아픔을 치우친듯한 시각으로 그려냈다거나, 그를 뛰어넘는 실력 있는 작가가 우리나라에서만 100명도 더 된다는 일부의 시각이나 어느 평론가의 인터뷰 등은 공허 할 뿐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적을 이룬 힘은 번역에서 나왔다.
"한국인의 감성을 제대로 번역해 낼 수 있는 번역가를 찾기 힘들 것이다" 그동안 출판업계에서는 자조적인 이 푸념이 지배적이었다. '뜨뜻미지근하다'라거나 '희무끄럼하다' '뻘쭘하다'등과 같은 한국인의 다양한 감성의 문체(文體)로 번역하여 외국인에게 전달할 방법이 쉽지 않기때문이다. 특히 노벨상이나 멘부커상 등의 세계적인 문학상을 운영하는 서구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라마다 사람이 느끼는 감성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공로의 반 이상은 번역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사람은 2015년 당시 나이 29세였던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였다. 그는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운 지 6년밖에 되지 않아서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의 번역으로 데버라는 2016년 '멘부커 번역상'을 받았고, 같은 자리에서 한강 작가는 '멘부커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당시, '채식주의자'의 번역이 잘 못 됐다는 일부 번역가들의 호된 비판도 있었다. 원작을 왜곡하고, 특정 부분을 누락하여 서구인의 입맛에 맞게 번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원작의 큰 줄기가 손상되지 않는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감성에 맞도록 번역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천사를 흰옷을 입은 모습으로 서구인들은 번역하였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의 성경에는 검은 옷을 입은 천사로 번역하었을 때 그들이 천사의 존재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이해를 시키기 위하여 빗대어 이야기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카루소(Caruso)라는 노래가 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를 기리는 내용으로, 병에 걸려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고향 나폴리만으로 돌아온 카루소의 심경을 묘사한 곡이다. 세계 최초의 음반에 실린 가곡인데, 당시 앨범이 6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는 대 히트를 기록한 음반이다. 이를 번안한 조영남의 노래 '카루소'를 원작과 의역(意譯)한 내용을 비교하여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단, 직역(直譯) 가사는 1절만 소개하고, 조영남의 번안한 가사는 3절까지 모두 적어 본다. 일반적 번역 형태와 번안(飜案/원작의 내용이나 줄거리는 그대로 두고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시대나 풍토에 맞게 바꾸어 고침)한 가사를 비교해 보라.

실화를 바탕으로 작사, 작곡된 이 명곡을 감상해 보시기를 바라면서 토요강좌를 대신한다.
말미에 소설 등단에 앞서 시인으로 먼저 등단 했던 한강의 시 한 편을 올린다. 시는 모든 문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Qui dove il mare luccica
e tira forte il vento
​su una vecchia terraza
davanti al golfo di surriento
un uomo abbraccia una ragazza
dopo che aveva pianto
poi si schiarisce la voce
e ricomincia il canto


불빛이 반짝이는 바다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
소렌토를 바라보는 오래된 테라스 위에서
한 남자가 눈물 흘리는 소녀를 안고 있네
그리고 그는 목을 가다듬고
노래하기 시작하네

​(후렴)
Te voglio bene assaie
ma tanto bene sai 
e una catena ormai
che scioglie il sangue dint'e vene sai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정말 많이 사랑하오 알고 있소?
지금 이 사랑의 굴레가
내 모든 피를 다 녹여버린다오

https://m.youtube.com/watch?v=3F1k0D2Nm_c&pp=ygUT7KGw7JiB64KoIOy5tOujqOyGjA%3D%3D
의역(意譯) 가사

1절_

쏠레멘트에 노을지는
쓸쓸한 해변가를
그대 모습 찾아
나홀로 걷고 있네
수평선 저너머 아련히 들려오는
누구를 위한 노래인가
사랑의 세레나데

(후럼)

나 그댈 사랑해
나 진정 그댈 사랑해
그대없이 나는
그대없인 난 못산다오

2절 _

쏠레멘트에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소리
브람스의 선율처럼
저음으로 들려오는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
내뺨위에 흐르는
까닭도 없는 눈물
우리의 나날들은
신파 연극 같았지만
우리의 사랑만은
진실하고 숭고했오


3절_

우리의 나날들은
신파 연극 같았지만
우리의 사랑만은
진실하고 숭고했오
이 늙은 음악가 카루소
최후의 노래를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대에게 바치려 하네
너무나 아름다운
쏠레멘트의 만추
불꽃놀이 축제처럼
가슴에 남아있네
그러나 허구에 찬 드라마처럼
우리의 지난 세월속엔
소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만
상처처럼 남아있네

나 그댈 사랑해
나 진정 그댈 사랑해
그대없이 나는
그대없인 난 못산다오
나 그댈 사랑해
나 진정 그댈 사랑해
그대없이 나는
그대없인 난 못산다오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