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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산책 /김륭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7. 1. 11:17

영혼 산책 /김륭

 

개나 고양이는 너무 상투적이고

어항 속의 금붕어나 구피는 라면을 먹고 잔

다음 날 퉁퉁 부어오른 아침의 눈곱처럼

사소하지

 

호랑이다, 나는 호랑이 한마리를 가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난한 엄마가 가난한 아빠를

위로하는 집안에서 호랑이 한 마리를

키운다

 

내가 사는 동네 작은 공원은 우리 집 정원

내가 가고 싶은 대학 도서관이나 시립 도서관을

서재로 이용하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팔뚝이 좀 굵다

 

야자가 없는 날 저녁에는 호랑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지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한

그런 눈빛으로 세상을 구경하지

 

학교를 데리고 길가의 깡통이나 돌맹이를 차 보다가

코를 풀다가 으르렁, 울기도 하면서 나는

동물원으로 소풍 온 아이처럼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구석구석 살피지

 

성적 증명서나 생활 기록부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학교나 집이 필요한 게 아니지

나는, 내가 나답게 살 나라가 필요했지

 

호랑이는 알지 내가 왜 혼자서 자주 우는지

나는 호랑이를 데리고 내가 모르는 어둠의 끝까지

갔다 돌아오곤 하지

 

언젠가 선생님도 알게 되겠지

내가 키우는 사랑과 영혼은 오로지

미래를 위한 사육장이나 SF 로맨스 따위가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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