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보게 꽃 / 조규춘
남도 보게 꽃 / 조규춘
들녘
지천으로 널려 있는
지들끼리 저절로 자라
만날 날 만나는 것들
길가 어디선들
간들온들 피어있는 것들
한 줌 들려 안방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야생화라 한다
진경산수에 빼어나지 않지만
도도한 들꽃들
면면히 들에서 살아오신 아버지
순례야!
남도 보게 놔둬라.
(시집 ‘공수래 병수거’, 시와사람, 2016)
[시의 눈]
유월, 들꽃이 지천입니다. 정원엔 은목서, 금목서와 구상나무 등 고급나무가 많습니다. 그 나무 밑에 고갤 내미는 개망초꽃, 난쟁이붓꽃, 센 삐비꽃들이 한줌 햇빛을 얻고자 까치발로 엿봅니다. 한데, 진압군 예초기가 그만 목을 날려버립니다. ‘남도 보게 놔둬라’란 아버지 말씀, 그게 곧 시임을 깨닫습니다. ‘지들끼리’ 자라도록 냅두는 게 평화의 세상 아닌가요. ‘간들온들’ 피었기에 짧은 생각으로 아버지 서탁에 놓습니다만,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그가 딸을 부릅니다. ‘남도 보게 놔둬라 잉’, 그래, 새 이름이 호명되는군요. ‘남도보게꽃’, 나는 팻말을 준비합니다. 하면, 사람들도 명부에 곧 올리겠지요. 퀴즈 검색어도요. 평생 아버지 가꾸시던 그 꽃, 누가 모르시나요. 나, 오늘 아버지 무덤에 들꽃 묶음 대신 그 꽃 더 피우라고 한병의 물을 뿌립니다. 그도 모자라 내 눈물도 보탭니다. 조규춘 시인은 전남 보성에서 나 2016년 시집 ‘공수래 병수거’와 ‘줄탁동詩’를 연거푸 내며 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대 디자인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디카시 창작과 시 퍼포머로 활동하는 천외의 기발한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