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소리 / 허 연
애들 소리 / 허 연
난데없이 복도에서
찰랑대는 애들 소리
천진스런 바람으로
정적이 깨지는 듯
반갑게
맞이할 할미도
늙은 애기 되소서.
(시조집 ‘종장’(終章), 예원, 2016)
[시의 눈]
아이들이라면 많을수록 좋지요. 한때 어른들이 덩달아 아이가 되는 걸 많이 보아왔습니다. 마을 앞에 놀고 있을 때 슬몃 다가와 ‘너 오늘 느그 엄마 봤냐?’, ‘아니요’, ‘그래, 내가 오면서 보니까 느그 엄마 고막원 똑다리 밑에서 꺼겅껑 울고 있더라’, ‘치, 거짓말!’, ‘요놈아, 내 눈으로 봤다니까’, 허참, 이리 놀려댔지요. 난 어른을 못이겨 먹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때야 어른들은 ‘그러니까 엄마 말 잘들어야 한다’고 다스려 주곤 했습니다. 요즘 아파트 놀이터에도 찰랑대는 애들 소리가 희미합니다. 야구놀이로 유리창을 깨거나 라면땅 따먹기로 골목을 다 차지하던 때, 사실 그때가 나라나 가정도 튼튼했군요. 낙서금지에도 백묵으로 ‘일순이는 순돌이를 좋아한다더라’ 같은 글씨를 쓰다 벌을 서며 자랐지요. 이제, 손주들은 키즈카페나 피시방에 제 혼을 다 내주고서 돌아옵니다. 그렇더라도 용돈을 더 줘야겠다고 맘먹습니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못마땅한지, ‘피웅웅 삑, 삑’ 핸들을 사정없이 돌리며 발사합니다. 한때 입 뾰족 내밀어 부르던 손주의 뽀로로송도 ‘아, 옛날이여’로 사라집니다. 허연 시인은 1923년 나주 영산포에서 나 1954년 ‘현대문학’에 시를 추천받고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불망비’(不忘碑, 1956), 시집 ‘얼굴’(1965), 시선집 ‘향촌 허연 시·시조선집’(1992), 시조집 ‘내 혼만은 정녕코’(2012) 등을 냈습니다. 그는 광주의 언론계와 방송계, 문화계에서 굵직한 직함으로 일한 지도자로 현재 왕성하게 창작하는 재미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