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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감정 / 이대흠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5. 24. 14:32

미로의 감정 / 이대흠

 

빗소리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건 위험합니다 좋다와 나쁘다의 사이에 벽을 치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좋다와 나쁘다의 손을 잡게 하는 게 시의 길이어서

여기에서 미로는 발생합니다

 

빗방울이 투명하다고 믿는 건 맹신입니다

다만 빗소리를 들으며 빗방울의 체온을 염려합니다 먼 데서 온 빗방울의 발뒤꿈치엔 갈라진 데가 많을것입니다

 

소리를 내며 삶을 마감하는 빗방울에게도 유언이 있을까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빗방울 소리가 아닙니다 빗빗빗 빗금을 그으며 내리는 빗소리도 온전히 빗방울만의 것이 아닙니다 탈출구없는 길은 외롭습니다

 

막다른 곳에 이른 미로의 감정을 생각합니다 나뭇잎이나 양철지붕이 아프지 않게 한없이 물러졌을 빗방울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이대흠 '코끼리가 쏟아진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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