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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들 - 옹호 / 유현아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5. 16. 13:24

질문들 - 옹호 / 유현아

 

어릴 때 놀이터 모래 속에는 마녀들이 산다고 믿었다

때가 되면 땅속에서 움찔거리며 모래를 뚫고 나오는 줄 알았다

나는 그것이 희망이라 생각했다

 

어느 밤 산꼭대기 한 귀퉁이 고양이 장례식에서 시를 읽었다

훌쩍거리는 눈물 사이사이 마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것이 평화라 생각했다

 

모래알처럼 불빛들이 부서지는 전광판 속에서

숨차게 올랐던 산꼭대기 같은 굴뚝에서

희망과 평화를 걸고 구부러진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다

똑바로 잠잘 수 없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었다

구부러진 사람들이 한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마녀에게 제발 이제 하늘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희망과 평화는 저 굴뚝 위 사람들이 별처럼 지키고 있다고

태양이 사라진 밤의 길목을 달처럼 내려다보고 있다고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던 놀이터와 산꼭대기 마녀는 없다

당신의 슬픔은 드러내지 못한 함성이었지만 모래알 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고 싶어졌다 평화라 부르고 싶어졌다

  [유현아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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