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사 온 귀 / 정혜진
새로 사 온 귀 / 정혜진
점점 말이 없어진
우리 할머니
엄마가 병원에 모셔 갔다
“할머니 귀 사 드려야 겠어요.”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
특별 진단 결과다
할머니 귓속에
새로 사온 귀 끼워 드렸다
귓속 집 찾지 못하던 소리들
생생 팔딱
의기양양 돌아왔다.
(동시집 ‘우리 곁에 병원이 있어’, 좋은꿈, 2022)
[시의 눈]
이웃과 소통은 커녕 이러저러 남 흉을 일삼는 동네도 있습니다. 듣는 게 병이 될 때가 있지요. 듣지 않으면 편했을 말. 비싼 밥 먹고 웬 험담을 그리 값싸게도 할까요. 난 할머니 치마폭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요. 옥수수 쪄놓으시고 내 호기심을 가만가만 북돋우곤 했답니다. 그 재미에 빠져들다 어느 날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시던 할머니를 안타깝게만 쳐다보곤 했지요. 그 무렵 할머닌 이야길 아주 닫아 버렸어요. 보충 귀가 한 벌 더 있었더라면 좀 좋았겠지만요. 나 중학교 때 할머니는 먼 귀를 찾아 떠나셨습니다. 몇 해 전 장모님께 새 ‘귀’를 끼워드린 일이 있습니다. 마실 회관에 가시어 ‘생생 팔딱’하시던 게…. 한데 보청기 낀 귀가 잘 들려서라기보다 자식 자랑을 한단 걸 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리 마시라 해도, 도무지 ‘의기양양’해만 하셨더랬어요.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그 이야기 주머니가 새삼 그립습니다. 사실 난 할머니의 그 자산으로 문학을 했다고 봐요. 이젠 까마득 옛 스토리텔링도 이미 바닥을 쳤지 뭐에요. 정혜진 시인은 고흥에서 나 1977년 ‘아동문예’ 동시 천료, 199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로 등단했습니다. 동시집 ‘바람과 나무와 아이들’(1979) 등 7권이 있고, ‘봄비’, ‘내 가슴엔’, ‘단풍잎 행진’이 교과서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는 화순에서 동심과 같은 지순의 흙에 파릇한 모종을 옮기듯 파란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