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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축소하라, 그리고 집중하라.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4. 7. 06:17
<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 축소하라, 그리고 집중하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시간과 분위기만 된다면 이런저런 수다를 떨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수다에는 진지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시 쓰는 일도 이와 같아서 많은 이야기를 수다 떨 듯 쓰면 시의 알맹이를 내어놓기 힘들게 된다. 한 편의 시에는 하나의 사건만을 다루는 것이 좋다. 즉 텃밭의 이야기를 시로 다루었을 때, 우리는 흔히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나 깻잎, 또 다른 작물 등 텃밭에서 커가는 모든 작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상추면 상추, 깻잎이나 고추 등 하나만 가지고도 우주를 담을 수 있다. 하나를 선택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집중하라는 말이다. 한가지 정서를 구체적으로 쓰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텃밭에서 선택한 하나의 대상을 의인화시켜서 화자의 정서를 담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추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면 시가 된다. 시의 화자는 하나를 등장 시키는 방법이 좋다. 가끔 다중화자가 등장하는 시도 있지만, 특별히 시를 잘 쓰지 못하면 오히려 그런 방법은 시의 몰입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시의 몰입성이란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 한 부분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주방의 이야기를 쓸 때도 주방 전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냄비의 손잡이나 주걱, 숟가락 하나에만 집중해도 시 몇 편을 쓸 수 있다.
시인은 우주 전체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가의 민들레 한 송이에서도 세상의 이치를 발견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시는 직접 말하는 문학이 아니다. 관념적인 것도 물질적 세계로 바꾸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즉, 비유를 가져와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사물화하는 작업이다. 사랑이나 기쁨, 슬픔, 영혼 등을 관념적으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면 시가 안 된다. 그렇지만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단어도 이미지화하면 시의 언어가 된다. 예를 들면 “당신을 죽을 만큼 사랑해”라는 표현은 관념적이고 진부하여 시어가 되기 힘들지만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장미예요"라고 사물화, 이미지화 시켜보란 뜻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감추고, 도덕적이거나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행동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같은 것이 사람에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망치는 주범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다. 그런 위선을 시에서 표현하면 진정성 없는 시로 읽힌다. 시적 화자가 고상한 척, 착한 척하면 사람들은 그런 시에선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시의 독자는 자기가 차마 고백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은 시를 좋아한다. 가슴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문자언어를 통하여 차마 내 입으로 말하지 못하던 주눅 든 자아를 깨뜨리는 작업이다. 시인은 위선의 굴레에서 과감하게 뛰쳐나와야 한다. 독자는 시인의 고상한 말이나 고매한 인품을 느끼기 위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억눌린 욕망이나 감추어진 본능을 시라는 형식을 통하여 대신 고백한 시, 자기를 솔직하고도 과감히 드러낸 진솔함이 느껴졌을 때 환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일근 시인의 '4월에 걸려온 전화'에서 자신의 속 마음을 드러내는데,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내밀한 이야기를 대신 한 것 같은 막연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이기에 사월의 첫 강의에서 다시 읽어본다.
사춘기 시절 등굣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낮 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애 4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가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_ 정일근
■ 회원 디카시 감상
정치 부재
아등바등 다투며 살아도
빨랫줄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색깔 논쟁을 벌이고 잘난척해도
도토리 키재기라는 사실을
물어뜯어야 사는 집게들만 모르고 산다
_ 서경만(디카시집 '작전본부'에서)
선거의 계절이다.
유세 현장에서 들려오는 상대를 향한 말들이 사납다. "정치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서로가 손가락질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우리의 평균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훌륭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치인 중에서 불량품이 많아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많이 노출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실수도 크게 부각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파에 매몰된 정치문화로 인하여 훌륭한 사람도 그 판에 들어가면 고만고만한 사람이 되거나, 말 한 번 잘못하여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실재로 "저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다.
서경만 시인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빨랫줄'은 다의적인 은유다. 국회의원의 현실을 빨랫줄에 매달린 집게로 본 발상이 재미있다. 빨랫줄에 매달리지 않으면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물고 뜯는 능력만 커져감을 본인들만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알고 있지만 자기 소신대로 할 수 없는 한국 정치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나라든 그 나라의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다. 그런 사람을 뽑은 우리의 책임이다. 잘못 뽑아놓고 욕을 할 것이 아니라 선거로 좋은 사람을 가려내야 하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선거를 외면하는 사람은 그런 정치인의 지배를 받고도 싸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래도 안되면 차차선이라도 내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엔 더 좋은 사람이 선출되도록 좋은 정치인의 조건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제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시인은 시대의 선각자다. 최고의 문학인인 시인은 정치의 나쁜 면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정치인의 모습을 칭찬하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혼자의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세상이 바뀌는 모든 행동은 한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시를 쓰는 사람만이라도 지금부터 좋은 세상을 선험적으로 제시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세상은 한꺼번에 좋아지질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자꾸 좋아지고 바뀌게 된다.
< 이어산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