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리폼 / 정경화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3. 11. 06:43

리폼 / 정경화

 

해진 옷 맡길 때는 자전거를 타고가요
30여 년 낡고 낡은, 딱 한 벌 나들이옷
그런 옷 안고 갈 때는 휘파람을 불며가요

꼬질꼬질 솔기에도 미륵이 숨었는지
공복의 악수마다 의연하던 품새였조
페달에 휘감겨 도는 봄먼지가 구수해요

그대 옷 찾으로 갈 땐 자전거를 타고가요
삑사리 휘파람은 바람에게 리폼받고요
반백을 함께 하고픈 나의 길도 리폼해요
(시조집 ‘눈물값’, 목언예원, 2023)

[시의 눈]
황사의 철입니다. 변덕이 잦은 날씨에 미처 봄옷 장만을 못한 채 또 맞네요. 아내는 장롱을 살피다 소맷귀 닳은 줄무늬 춘추복을 꺼냅니다. 참, 강의 때 입겠다는데 야단이군요. 그녀는 백화점에 갈까 하다 농지기를 그냥 종이백에 담지요. 집앞 수선가게로 갑니다. 주인이 마침 저녁쯤 오라네요. 서둘러 산책을 끝내지요. 그녀가 가게 문을 열자 옷걸이에 걸린 한 훤칠한 양복이 눈에 쓱 들어옵니다. 허, 다림질까지도…, 감쪽 새 옷인가 했네요. 단추구멍에 ‘꼬질꼬질’ 숨은 솔기도 매끈히 다듬었군요. 이젠 그이가 사람들과 악수할 땐 더 의연해 지겠네요. ‘감사합니다!’ 서둘러 나오는 발은 자전거 페달이듯 신바람을 밟아댑니다. 그녀는 얼른 입어보라 채근합니다. 순간 내 석류빛 웃음이 늙은 볼을 다 차지합니다. 베란다 스치는 바람에 리폼 받은 휘파람곡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갈라진 입술로 난 서툰 퍼즐이듯 곡조를 맞춰봅니다. 허, 아내와 나는 이런 일에 이골이 났더랬지요. 아이 셋을 졸업시킬 때까지, 아니 아니 지금도요. 정경화 시인은 대구에서 나,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2001년 동아일보와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풀잎’(2007), ‘편백나무침대’(2020) 등이 있습니다. 그는 덧없이 흐른 세월에도 관수하듯 잔잔한 사유를 뿌려 서정의 생명력을 돋쳐내는 시인입니다.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