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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 보통말을 시어로 만드는 방법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3. 9. 09:17

<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보통말을 시어로 만드는 방법


세상에서 시의 재료가 아닌 것이 없다. 그것은 지구의 모래알갱이 보다 많지만, 그것으로 새로운 무엇을 만들지 않으면 자연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주에 강조했듯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은 예술이 아니다. 시 예술도 마찬가지다. 마치 모래에서 유리를 등을 제련해 내는 방법을 모를 뿐 그 성분을 이용할 줄 알면 다른 새로운 물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시적 대상을 새로운 의미로 가공하지 않고 묘사(설명)에 그친 시는 "모래는 모래다"라고 말하고 끝내버리는 형태가 된다.

시인은 아직 제련되지 않은 원석 같은 시적 대상을 잘게 부수고 그것을 내 것으로 완전히 녹이는 작업부터 해야 시를 생산할 수 있다. 대상을 깊이 연구하자는 말이다.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내용은 잡석이다. 시의 순도를 낮추거나 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불순물은 골라내어야 한다. 말의 알맹이를 소롯이 남기는 일이 시 짓기의 정석이다. 그러나 그것 만으론 부족하다. 보석 세공사처럼 ‘함축성’이 담긴 낱개의 재료를 서로 잘 조응하도록 짜 맞추지 않으면 보석으로 탄생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잘 만든 보석이라도 사람이 먹을 수는 없다. 다만 새롭고 귀한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 시는 새롭고 귀한 내용으로 가공되었을 때 빛이 나고 높이 평가 받는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이루는 말의 결정체를 모아서 만든 것이기에 사람의 학문 가운데서 근원적으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이유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런 이론을 막상 시 짓기에 적응하려 해도 뜬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강좌는 손에 잡히지 않는 고상한 지식을 자랑하는 공간이 아니다. 실제 응용하고, 서툴지만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서로 배워가며 더불어 함께 길을 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시처럼 빛나는 인격과 품격의 사람이 되어가자는 운동을 하는 광장이다.

조급하게 여기저기 기웃거려봐도 오히려 더 헷갈린다. 꾸준함을 나의 가장 좋은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시를 잘 가르친다는 스승을 찾아 다니는 사람치고 뛰어난 시를 쓰는 사람을 별로 못봤다. 혹 지금은 각광 받는다 해도 자기 이익을 위해 쉽게 배은망덕하는 사람의 시는 자기를 꾸미는 장식품이지 진정한 시가 아니다.
시를 지을 때 무엇을 말하려는지 직접적이 아니라 짐작되는 원석을 잡석과 분리하여 남기자. 그것이 시어(詩語)라는 가장 중요한 재료를 준비하는 방법이다. 시어는 특별한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보통 쓰는 말인 구어체(口語體)다. 그것을,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잘 배치하는 일이 시 세공사의 핵심적인 일이다. 즉 우리의 일상적인 말을 잘 짜 맞추어서 새로운 의미의 시어(詩語)가 되도록 하는 일을 꾸준히 자꾸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시를 제대로 세공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보통 말이 시어가 되는 과정

1. 시적 대상을 정하되 넓게 잡지 말고 대상을 될 수 있으면 좁혀서 선택하고 집중하자.

2. 시적 대상의 특성과 향기, 색감, 원천 등을 조사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그것과 연결될 수 있는 제3의 비유적 이야기를 적어보자.

3. ‘시적 정의(definition)’, 즉 시인의 진술이 들어가도록 해 보자. 진술이란 시인이 새롭게 발견하여 독자에게 보고하는 그 무엇이다.

4. 시는 구경꾼처럼 쓰는 것이 아니다. 작품 속에 자신을 숨긴 채 주저하고 있던 자신의 자아가 얼굴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이다.

5. 시적 대상이 지닌 속성과 그 대상에 맞는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므로 짧은 여행이 아니라 긴 여행이 좋은 시어를 많이 찾아내는 가장 빠른 길이다.

6. 시어가 매끈해도 지향성(志向性)이 결여되면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접적이 아니라 짐작되어서 생각의 여운이 남는 상태의 조합이 되도록 짜 맞춰 보자.

7. 제목은 시가 완성되었을 때 붙여도 된다.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의미의 확장이 있다면 더 좋다.

8. 시가 모이면 좀 어설퍼도 시집으로 묶어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격차는 크다. 시의 보석함은 시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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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정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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