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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2. 1. 07:38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윤이나 시인의 디카시와 김해인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감상하겠습니다.



입구
눈멀고 귀먹어야 보이는 게 있다
서슬 퍼런 세상에 덤비는 것도 한때

올 때는 울었지만 가는 길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난, 봄날이면 좋겠다

_윤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에는 좋은 날도 있지만, 고통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 고통은 때로는 "눈멀고 귀먹어야 보이는 게 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감각이 마비된 사람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견뎌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아픔의 강도는 다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잘 견딘 사람은 반드시 좋은 날이 오고야 만다.

세상에서 돈과 함께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바로 금(金)이다. 처음의 그것은 금광석이라는 하나의 돌덩이에 불과하므로 그것 만으로는 가치를 발휘하기 힘들다. 그러나 불에 넣고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금이 되어 간다. 그 순도는 뜨거운 불에 얼마나 많이 녹이고 제련했는가에 따라서 다르다. 14번 불순물을 제거한 금을 14K, 18번 불의 고난을 겪은 금을 18K, 24번이나 단련된 최종 결정체를 순금, 또는 정금(正金)이라는 금의 최고 등급 24K가 된다. 실로 순금이 되기 위해서는 불에 완전히 녹아야 하는 시간을 수없이 견뎌야만 한다. 뜨거운 고난과 역경을 많이 이겨낸 사람과, 작은 역경에도 주저앉는 사람 중에 누가 금과 같이 가치 있는 인생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을까?

윤이나 시인의 위 디카시의 제목이「입구」다. 왜 입구라고 했을까? 다의적인 뜻이 있겠지만, 나는 그가 견뎌온 고난을 떠올려 보면서 이제 그 상황을 벗어날 때가 되었거나 그것을 염원하는 기도이리라. "올 때는 울었지만 가는 길/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난, 봄날이면 좋겠다" 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빈 손으로 태어나서 연륜이 쌓여갈수록 시선이 깊어지지만,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마지막 입구를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다가 되돌아 보면, 눈물도 한 때의 분노도 삶의 중요한 조각이 되고 입구도 되며, 지나온 문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는 진정한 전쟁은 밖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데,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시간과 인내’라고 한다. 저 디카시의 전경인 사진에 등장하는 늙은 인생이 숲길을 응시하는 모습에서는 아직도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는 인생이다. 수없이 단련된 그의 앞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고, 정금 같은 날이 늦지 않게 올 것이다. 겨울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 말이다.



버스 정류장


김해인


어둠이 발자국을 지워버린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가 절룩이며 서성이는 줄 몰랐다

애가 타서 시커멓게 가슴이 꺼져가는 줄 몰랐다

지고 있는 책가방만 무거운 줄 알았지
어머니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인지 몰랐다

새벽 장삿길에,
빙판에 넘어져 절뚝거리면서 막내아들이 타고 있는 막차를 무작정 기다린다

밤새 함박눈이 내려 어머니의 다리가 푹푹 사라지는 줄 몰랐다

이렇게 깊은 어둠으로 막차가 달리는 줄 몰랐다

이 막차가 어머님 계시는 곳으로 가는 줄 몰랐다

오늘도 막차가 오지 않는다

난 내일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시를 읽으면서, 신문에서 봤던 일본 와세다대학교 졸업식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시 한번 우리의 영원한 화두 어머니를 생각하자는 뜻에서 옮긴다.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어머니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집에 불이 났다. 이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어머니는, 두 아들이 자고있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소방관도 불길 때문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두 아들을 이불에 둘둘 싸서 나오는 바람에 아들 둘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다리를 다쳐서 불구가 되었다. 그 후 이 어머니는 구걸까지 해가면서 아들을 키웠는데 다행히 공부를 아주 잘하여 큰아들은 동경대학교에, 작은아들은 와세다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두 아들은 졸업도 수석으로 하게 된다. 졸업식날,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보려고 대학에 들어가려는데, 다리를 절며 흉터로 일그러진 모습의 이 여인을 수위실에서 막았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아들은 자기를 특채한 회사 사장과 귀빈들이 있기에 큰 부담을 느끼고 수위실에 전화하여 "어머니가 찾는 그런 사람은 여기 없다고 하라"고 했다. 이 사실을 눈치채고 아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큰 슬픔과 실망, 그리고 자기 인생의 허무함으로 자살할 결심을 했다.

마지막으로 작은아들 얼굴을 먼발치에서라도 한번 보고 죽기로 했다. 차마 졸업식장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어머니를 발견한 작은 아들은 어머니를 부르며 달려 나와 어머니를 등에 업고 학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사람을 잘못 봤다. 나는 저 사람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소리쳤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맨 앞줄 자기 자리에 앉혔다. 귀빈들과 사람들, 학생들이 수군거리자 어머니는 어찌할 바 몰랐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아들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면서, 초라하게 앉아 있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 속에서 구해 내고, 구걸을 해서라도 자기를 공부시킨 위대한 어머니라고 눈물 흘리며 소개했다.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도 그제서야 감동의 눈물이 고였다. 이 소식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둘째 아들은 큰 회사 오너의 사위가 되었으나 큰아들은 예정되어있던 대기업 입사마저 취소되었다.

지난 1월 20일 전남 광양시의 한 아파트에서도 위 이야기와 비슷한 불이 났다. 아파트 5층 방 안에는 다섯 살 미만의 자녀 세 명이 있었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고 소방관도 주저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연기를 뚫고 6층으로 올라가 베란다를 타고 5층 방 안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목욕탕으로 대피시켜 시간을 벌었고, 소방관들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불 속도 마다하지 않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뛰어드는 존재다. 이 세상 부모치고 자식 잘되기를 빌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어머니를 너무 모르거나 늦게 안다.

오늘 김해인 시인의 시는, 희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다. 어머니가 걸어 왔던 그 길, "이렇게 깊은 어둠으로 막차가 달리는 줄 몰랐다/ 이 막차가 어머님 계시는 곳으로 가는 줄 몰랐다"라고 한다. 그도 언젠가는 어머니 곁으로 갈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 발딛고 있는 지금 아버지로서의 위치도 읽힌다. "난 내일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서 또 한 사람의 부모를 목격한다. 부모는 나이 든 자식이라도 집에 잘 오고 있는지 걱정하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이다.

김해인 시인은 202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당선한 우리 회원이다. 그는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시를 쓴다. 여기에 무슨 작품의 높낮이를 들이대겠는가? 감동이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새로운 사건의 중심 화자로서 시인이 말하는 장르가 시다. 우리는 겉 멋에 든 시가 아니라 진솔하게 옆에서 들려주듯 그런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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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