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에 가면 / 정순영
풀밭에 누우면
와불
바위 밑에 들면
벽면수행
그림자도 가부좌를 틀면
참선
날아가는 까치는
불경
깨져나간 불탑 모서리
천년을 깨우는
목탁
(시집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 시와 사람, 2024)
[시의 눈]
늦깎이 시인이 겸허히 고백한 풋감보다 떫은 첫 시집이다. 죽은 가지가 하늘을 밀어올리고 밑동에 꽃 한 송이 피워올리는 마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음각한 시편. 그중에서 운주사가 선뜻 시야에 들어온다. 많은 시객들이 다루었을 법한 매력적인 오브제는 후학이 다루기가 조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자칫 진부하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 그럼에도 ‘운주사에 가면’을 들여다보노라면 오롯이 읽히는 맛이 있다. 우선 절제미가 느껴진다. 정돈된 시심이 시적 오브제와 대면하고 있음이다. ‘와불, 벽면 수행, 참선, 불경, 목탁’에서 불심의 깊이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불심의 기운에 이끌려 운주사를 찾았을 것이고, 이윽고 홀리다시피 접신의 상태에서 시를 잉태했을 공산이 크다. 운주사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 사찰로 세웠다는 설화를 담은 절이다. 풍수지리상 지세를 보완해 주는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탑이나 불상들을 조성해 세워진 사찰인 것. 호국과 안녕을 도모한 국사의 지혜를 만나는 절이다. 국사에 의하면 한반도는 대양을 향해 뻗어가는 배, 운주사는 그 배의 중심인 뱃구레에 해당한다. 목탁 소리, 그것은 국운이 활짝 열리기를 염원하는 덕담으로 들린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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