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지우다 / 김광희
멀리 떠난듯 생각했는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선 하나
어쩌면 호사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경계욕심이었네
인왕산 소나무에 걸려
졸고 있는 달은
알고 있는 듯 천천히
멀어져 가네
- 김광희 '분노' 부분
지울 수 없는 선 하나가 있다. 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아 마음속에 균열을 내버린 저 빗금 하나. 사선으로 그어져 밤잠을 못 이루게 하는, 한 줄의 금이 온몸의 세포를 깨울 때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를 망치는 건 거대한 악의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심이었을 때가 있다. 소리 지르고 싶을 때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자. 천상의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선을 남기지 않는다. 평온은 자신과의 화해로부터 온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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