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의 세계 / 김영석
옛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
푸나무나 꽃만 그리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느 구석일망정
작은 벌레 하나가
그 속에서 조용히 살게 하는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
오늘은 내 홀로
하염없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
그 생각의 등불 곁에
작은 벌레 하나를 숨쉬게 하여
그 가느다란 더듬이로
먼 세상을 조용히 그려본다
- 김영석 '등불 곁 벌레 하나'
식물 그림 한 점에 넣어 키우는 벌레 한 마리라니. 시인의 발상이 따스하다. 한 장의 회화는 화가의 윤리와 세계관을 응축한다. 무엇을 그리고 또 무엇을 끝내 남겨두는가, 무엇을 지우고 또 무엇을 생략하는가의 문제는 곧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속 가장자리에 숨겨둔 작은 존재가 그가 보는 세계 전체일 때가 있다. 빠뜨리지 않은 한 점의 생명이 있기에 저 그림은 영원할 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며 기억할 만한 등불 같은 시다. 어둠 속에서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를 묻는다.
[매일경재신무누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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