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 / 머거릿 애트우드
이건 늦은 시들.
시라는 건 십중팔구
대단히 늦기 마련이다,
뱃사람이 보낸 편지가
그가 물에 빠져 죽은 후에야 도착하듯.
손쓸 수 없이 늦은, 그런 편지들과
늦은 시들은 비슷비슷해서
마치 물속을 헤치고 다다르는 듯해.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
전쟁, 눈부신 시절, 욕망에 빠져들었던
달밤, 작별의 입맞춤, 그 무엇이든 시는
해안으로 쓸려온 표류물.
혹은 저녁 식사에 늦듯, 한 발 늦는 것.
차갑게 식거나 다 먹어치운 낱말들뿐이지.
불한당, 곡경, 피정복민,
우거하다, 깃들다, 일삽시,
천대된, 읍하는, 궤망한.
사랑과 기쁨, 그것조차도: 몹시 갉아 먹힌 노래.
녹슨 주문. 케케묵은 후렴.
늦었다, 너무 늦었다,
춤을 추기에는 대단히 늦어버렸다.
그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불러라.
빛을 더 밝혀라. 계속 불러라,
노래를, 영원히.
마거릿 애트우드(1939~)
마거릿 애트우드는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열다섯 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했다. 그는 어느 날 서랍 속에 묻혀 있던 젊은 시절의 원고를 발견하고, 그 시들을 타이핑하며 퇴고해 나갔다. 아주 늦게 도착한 이 시들을 시인은 “해안으로 쓸려 온 표류물”이라 부른다. 시간의 파도를 넘고 수많은 감정과 기억을 지나 여기 다다른 시들은 “몹시 갉아먹힌 노래” “녹슨 주문” “케케묵은 후렴”처럼 들리기도 한다. 4연에 나열된 ‘곡경, 우거하다, 일삽시, 천대된, 읍하는, 궤망한’ 등 낯설고 어색한 표현처럼. 다른 시간의 지층에서 발굴된 듯한 이 단어들은 시의 시대착오적 또는 시대초월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렇다. 시는 너무 일찍 오거나 너무 늦게 도착한 편지와도 같다. 언제 누구에게 전해질지 알 수 없지만 간절하게 누군가를 향해 있는 도정(道程)의 언어. ‘유리병 편지’처럼 “시라는 건 십중팔구 대단히 늦기 마련”이다. 시인은 “너무 늦었다”고 탄식하는 한편 “그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라고 주문한다. 그래도, 계속, 영원히,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캄캄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히는 일이기에.
[경향신문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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