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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6. 1. 4. 06:13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박춘혁 시인의 디카시와 고바다 시인의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마지막 키스

아득한

아찔한
찰나여

_ 박춘혁


생텍쥐페리의 세계적 명작 ‘어린 왕자’에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해주는 명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박춘혁 시인의 저 디카시는 그 인간관계에 대한 양면성을 짚고 있다.「마지막 키스」라는 제목과, 순간 포착한 사진과 시적 표현이,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현악 3중주의 화음 같이 어울린다. 슬픈 듯하면서도 아득하고 아찔한 느낌이 전이되어 온다.

‘관계’란 음악의 화음과 같은 것이다. 서로 다른 음색이라도 나의 소리를 상대방의 음색에 맞게 조율하는 일이다. 내 소리가 너무 크면 불협화음이 되지만, 적합한 내 소리를 내지 않으면 화음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도 잘 드러난다. “행복은 소유에서가 아니라 존재에서 나온다.”라는 말이다. 즉, 상대와의 화음 속에 있는 나의 존재, 서로 헌신하고 나누며, 사랑의 의미를 강화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러나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세상을 살아가기는 힘들고, 그런 사람에는 인간관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독특한 나만의 자아를 유지하되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많이 맺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마지막 키스'를 할 수밖에 없는 관계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수도, 다음 만남을 위해 잠시 헤어지는 것일 수도 있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의 유불리에 따라서 유지, 혹은 단절되는 관계와, 사랑으로 유지되는 관계로 대별 할수도 있지만, 위 디카시는 “아/ 아득한/ 그/ 아찔한/ 찰나여”라며 내년 봄의 재회를 생각하게 하므로 그 근본은 희망적이다. 마지막 잎새와 낮달의 구도, 시적 문장의 합일이 몽환적이고 절묘하다. 이별이 영 이별은 아니지만, 그래도 헤어짐은 항상 아쉽고 쓸쓸하다. 자연의 순환 고리에서 인생의 만남과 이별을 생각하게 하는 예술디카시다.



별 다방에 모여앉은 얼룩말들


고바다


말을 낳고
말을 키우고
말에 말을 더하면 어디든 달려나가는
말무리가 되고

정해진 건 없지만 말에 얼룩이 있어
가끔 그 얼룩 속에 빠져 길을 잃고

신랄한 말들에는 여과 장치가 없어 날뛰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말들이 껑충껑충 뛰는 건 또 다른 재미
숨겨둔 의미는 필요 없어
건초더미에서 찾아낸 우리의 방식은
그냥 질겅질겅 씹는 것일 뿐

말의 꼬리는 함부로 자르는 게 아니야
미친것처럼 날뛰다가 고꾸라지기도 하니까

주인 없는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해
말의 색깔을 덜어내고 무게를 더하자
창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

내 얘기를
너의 이야기를
그녀라는 3인칭으로 둔갑시키고 나니
우리는 적당하게 팔랑거리며
햇살의 앞면처럼 조금은 자유로워진 생각으로
저녁이 오는 것을 보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줄줄이 쏟아지는 말들 속에 파묻혀
하루가 가고 있었어

항상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말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기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인격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는 순간, 그 말은 천지사방 분간 못하고 뛰어다니다가 나를 다치게 하는 흉기가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앞서 박춘혁 시인의 디카시처럼, 고바다 시인의 이 시편도 인간관계에 관한 진술이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가 이우환 화백의 작품은 겉보기에는 매우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내 작품에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화면 속 여백은 공간이 아니라 사유와 감각이 머무는 자리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참을 줄 알고, 상대를 배려하는 공간을 남겨 놓을 줄 아는 지혜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요즘처럼 복잡다단하고 살아내기에 바쁜 사람에게 말로써 말 많게 하면 삶이 피곤하고 관계는 복잡해진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손실혐오감으로 끝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곤 좌절할 이유를 교묘하게 찾아내어 스스로 좌절 속에 파묻혀 괴로워 한다. 그런 삶의 방식은 찾아온 행복도 발로 차버리는 행위다.

우리 인생살이에는 두 가지의 말 통장이 있다. 하나는 ‘좋은 말 통장’이고, 또 하나는 ‘나쁜 말 통장’이다. 좋은 말 통장에 저금을 많이 한 사람은 그 통장으로 인해 현세에서 존경받고 내세에서도 좋은 곳으로 가는 넉넉한 여비가 된다. 그러나 나쁜 말 통장은 저축은 내가 해도 그것을 꺼내서 심판하는 일은 남이 한다. 내 마음대로 그것을 감출 수도 없다. 언젠가는 백일하에 드러나므로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끌려다니다가 인생은 망하는 길로 가는 푯값이 된다. 그러므로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올해는 붉은 말의 해다. 고바다 시인은 그것을 시제로 저 시의 집을 지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주유소 주유기에 주인이 A4용지에 써서 붙여놨던 말이다.
“손님, 오늘은 집에 가실 만큼만 주유하십시오. 내일부터 기름값이 많이 내립니다”
이 말을 손님에게 들려주고 있는 주유소 주인은 손해를 봤을까, 신뢰라는 선물로 복을 받았을까?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많을까, 적을까?
말의 신뢰는 좋은 관계를 맺는 명약이다.

<시인 이어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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