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외로운 곳에 가로등이 서 있습니다 / 최상경
우리 동네 보안관
돌아오는 자식 기다리는 부모
일 년 삼백육십오 일
교대 근무도 없고
흔한 월차도 없는
극한 직업 야간 근무
선 채로 사는 가로등
때론 꾸벅꾸벅 졸다가
잔바람에도 번쩍 눈뜨는 너
몸에 밴 지독한 직업병
네 곁을 맴도는 밤
우린 서로 닮았나 보다
(시집 ‘네모 속에 들어온 달’, 도서출판 상상인, 2025)
[시의 눈]
흔히 밤거리에서 마주치는 가로등, 의미 없이 스치는 가로등은 그저 가로등일 뿐이다.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수없이 널려있는 인공적 소도구쯤에 불과한. 그러나 가로등의 존재 이유를 질문하며 깊게 들여다본 가로등. 거기에는 세계를 이해하는 코드가 들어있고 정서적 공감이 함축돼 있음을 발견케 된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고 흐르는 가로등 불빛은 돌연 인간적이다. 깊은 심야에 차량 드문 밤거리를 운행할 때 인기척하며 다가오는 가로등 불빛, 일순 든든한 반가움이 아닐 수 없다. 따스한 위안이자 위로이다. 가로등의 가치는 깜깜한 밤일수록 빛난다. 그리하여 가로등은 단순한 거리를 비추는 인공물이 아닌 삶의 길을 제시하고 비추는 숭고한 사유물이 돼 가슴에 스며든다. ‘때론 꾸벅꾸벅 졸다가/ 잔바람에도 번쩍 눈뜨는 너/ 몸에 밴 지독한 직업병’에 드러난 것처럼 가로등은 졸음을 견디고, 세파를 견디며 맡겨진 책무를 수행한다. 가로등에서 짓눌린 어깨를 추스르는 가장의 버거움이 들여다 보인다. 교대 근무도 없이 온밤 지새우는 팍팍함을 고스란히 견디는 미더움을 본다. 인간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된 미학적 오브제로서 고귀한 몸짓으로 가로등은 서 있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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