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걷다 / 정호승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축복인가 (후략)
-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부분
올해는 첫눈이 일찍 내린 까닭인지, 하얀 눈을 기다리던 마음이 예전만큼 크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첫눈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아직 세상을 덜 의심했던 과거의 그날로, 지금보다는 덜 냉소적이었던 오래전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무채색의 언어, 눈은 세상을 잠시 평등하게 만든다. 불가피했던 죄와 후회를 소리 없이 가려주기 위해 첫눈은 내린다. 눈 내린 세상은 삶의 여백이다. 그 여백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
[매일경제 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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