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조재철 시인의 디카시와 김늘무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감상하겠습니다.
작업의 정석
오늘은 조재철 시인의 디카시와 김늘무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감상하겠습니다.
작업의 정석
이 길을 걷다보니
개망신 당하기 딱이네
그래도
주고받는 정이
그리워지는
_조재철
위 디카시를 쓴 시인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개수작로 2길’이라는 도로명 간판에 주목했다. 왜 하필이면 길 이름을 ‘개수작로’라고 했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으나 알 수 없었다. 관할 구청인 성동구청 문화예술과에 문의했더니, 토지관리과에 물어보라고 해서 그쪽으로 전화를 해봤으나 그 지명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없단다. 그럼 어디에 물어봐야 하느냐고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부분을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나라 행정의 담당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어느 부서에 배치되어 자기 업무를 어느정도 파악할 즈음이면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한 분야에 오래 근무하면 비리가 생길 수 있다거나, 공무원들이 자리에 대한 호불호가 있어서 속된 말로 뺑뺑이를 돌리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 머무는 자리인데 굳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는 그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전문가가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도 근무 환경이 힘든 부서는 인센티브를 더 주어야 한다. 또한, 전문적 소양이 있다면 그 분야에 오래 근무토록 하면서 전문가에 대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정착되어야지만 주민에게 진정한 행정 서비스를 펼칠 수 있다. 그랬을 때 국민은 공무원을 더 믿고 우리 생활 문화 전반은 발전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간 간부 이하의 공무원들은 옛날처럼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정착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백방으로 알아낸 결론은 이 ‘개수작로 2길’이라는 법정 도로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동구청 토지관리과 담당관에게서 관내의 ‘개수작로’에 관한 유래를 알아보고 전화를 해달라고 했더니 몇 시간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조재철 시인이 알아본 내용과 같았다. 그 지명은, 그쪽 길 중간에 ‘두 남자의 개수작’이라는 호프집이 있는데 장삿속으로 길 입구에 이런 간판을 불법으로 달아 놨다는 것이다. 웃기는 해프닝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본론으로 돌아와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야 함을 상기하자는 뜻도 이 디카시를 텍스트로 삼은 이유 중 하나다.
위 디카시의 화두는 정(情)이다. 정은 인간과 인간끼리 맺어지는 마음의 끈이다. 우리의 속담에 “굶어도 정만 있으면 살고, 정이 들면 곰보 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의 디카시 제목이 “작업의 정석”이면서 ‘개수작’이라는 의미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런 길에서라도 그 시절 “주고받는 정이/ 그리워지는” 서정적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정에 약하다. 개수작에도 쉽게 걸려드는 것은 정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 유전자는 어쩌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이 터졌어도 정을 주고받으며 버텨냈다. 그러나 우리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정이 메말라 가고 있다. 이웃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에 숨어서 정을 난도질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악랄한 범죄자나 자극적인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니, ‘인간다움’의 관심은 점점 사라진다. 조재철 시인은 이런 사회를 저 디카시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연말이다. 우리는 가족뿐 아니라 많은 관계에서 정 주고 정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동안 무심했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하자.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 이야기나 힘든 생활 형편지만, “그래도/ 주고받는 정”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부디 가진 자에게서 없는 자에게로, 높은 사람에게서 낮은 사람에게로, 강한 사람에게서 약한 사람에게로 정이 흘러넘치기를 바란다. 시인은 그 정(情)의 배달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너에게
김늘무
너가 산 나는
달림보다 멈춤이 길다
정지된 순간에도
빛은 스며들고
호흡은 고요히 흐른다
너의 숨 가쁜 발걸음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
멈춤은 다시 걷게 하는
대단한 힘이 된다
머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고
우리는 신나게 달리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위 시도 인연, 즉 인간관계의 내면적 확인이다. “너가 산 나는/ 달림보다 멈춤이 길다”라고 함으로써 ‘멈춤’이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멈춤’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렘’이고, 또 하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괴로움’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기다림으로 빚어진 시간이다. 김늘무 시인은 “정지된 순간에도/ 빛은 스며들고/ 호흡은 고요히 흐른다”라고 한다. 다음의 행복을 위한 “멈춤은 다시 걷게 하는/ 대단한 힘이 된다”라며 자기를 위로한다. 그 멈춤은 때로는 기쁨을 주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기기도 하지만, 그는 “머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이 빛나면 다른 한쪽은 그늘에 가려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삶의 리듬에 여백을 만들어주고 시간을 익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익어가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멈춤이라는 기다림은 그것 자체로도 빛이 난다. 그것은 , 기쁨도, 분노도, 사랑도 모두 품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이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더 단단케 된다. 그러니 그 멈춤의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관계는 삶의 희비가 갈리기도 하지만, 멈춰서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야 말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서로의 말을 다른 문화 코드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심해지면 서로는 이방인처럼 낯설어진다. 이때 멈춰서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정말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머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고/ 우리는 신나게 달리며
/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삶의 깊은 철학적 진술이 있어서 좋다. 시적 긴장감을 조이고 풀고, 비틀기와 뒤집기하는 과정의 호흡이 약간 짧다. 그리고 수미쌍관이 좀더 자면스럽고 명징하면 좋을 것 같다. 너가(X) ㅡ> 네가(O)로 수정해야 한다.
<이어산 글>
개망신 당하기 딱이네
그래도
주고받는 정이
그리워지는
_조재철
위 디카시를 쓴 시인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개수작로 2길’이라는 도로명 간판에 주목했다. 왜 하필이면 길 이름을 ‘개수작로’라고 했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으나 알 수 없었다. 관할 구청인 성동구청 문화예술과에 문의했더니, 토지관리과에 물어보라고 해서 그쪽으로 전화를 해봤으나 그 지명의 유래를 아는 사람이 없단다. 그럼 어디에 물어봐야 하느냐고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부분을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리나라 행정의 담당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전문가가 될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어느 부서에 배치되어 자기 업무를 어느정도 파악할 즈음이면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한 분야에 오래 근무하면 비리가 생길 수 있다거나, 공무원들이 자리에 대한 호불호가 있어서 속된 말로 뺑뺑이를 돌리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 머무는 자리인데 굳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는 그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전문가가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도 근무 환경이 힘든 부서는 인센티브를 더 주어야 한다. 또한, 전문적 소양이 있다면 그 분야에 오래 근무토록 하면서 전문가에 대한 혜택을 주는 제도가 정착되어야지만 주민에게 진정한 행정 서비스를 펼칠 수 있다. 그랬을 때 국민은 공무원을 더 믿고 우리 생활 문화 전반은 발전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간 간부 이하의 공무원들은 옛날처럼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거의 정착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백방으로 알아낸 결론은 이 ‘개수작로 2길’이라는 법정 도로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동구청 토지관리과 담당관에게서 관내의 ‘개수작로’에 관한 유래를 알아보고 전화를 해달라고 했더니 몇 시간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조재철 시인이 알아본 내용과 같았다. 그 지명은, 그쪽 길 중간에 ‘두 남자의 개수작’이라는 호프집이 있는데 장삿속으로 길 입구에 이런 간판을 불법으로 달아 놨다는 것이다. 웃기는 해프닝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본론으로 돌아와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야 함을 상기하자는 뜻도 이 디카시를 텍스트로 삼은 이유 중 하나다.
위 디카시의 화두는 정(情)이다. 정은 인간과 인간끼리 맺어지는 마음의 끈이다. 우리의 속담에 “굶어도 정만 있으면 살고, 정이 들면 곰보 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의 디카시 제목이 “작업의 정석”이면서 ‘개수작’이라는 의미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런 길에서라도 그 시절 “주고받는 정이/ 그리워지는” 서정적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정에 약하다. 개수작에도 쉽게 걸려드는 것은 정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 유전자는 어쩌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이 터졌어도 정을 주고받으며 버텨냈다. 그러나 우리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정이 메말라 가고 있다. 이웃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에 숨어서 정을 난도질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악랄한 범죄자나 자극적인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니, ‘인간다움’의 관심은 점점 사라진다. 조재철 시인은 이런 사회를 저 디카시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연말이다. 우리는 가족뿐 아니라 많은 관계에서 정 주고 정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동안 무심했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하자.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 이야기나 힘든 생활 형편지만, “그래도/ 주고받는 정”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부디 가진 자에게서 없는 자에게로, 높은 사람에게서 낮은 사람에게로, 강한 사람에게서 약한 사람에게로 정이 흘러넘치기를 바란다. 시인은 그 정(情)의 배달부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너에게
김늘무
너가 산 나는
달림보다 멈춤이 길다
정지된 순간에도
빛은 스며들고
호흡은 고요히 흐른다
너의 숨 가쁜 발걸음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다
멈춤은 다시 걷게 하는
대단한 힘이 된다
머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고
우리는 신나게 달리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위 시도 인연, 즉 인간관계의 내면적 확인이다. “너가 산 나는/ 달림보다 멈춤이 길다”라고 함으로써 ‘멈춤’이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멈춤’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렘’이고, 또 하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괴로움’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기다림으로 빚어진 시간이다. 김늘무 시인은 “정지된 순간에도/ 빛은 스며들고/ 호흡은 고요히 흐른다”라고 한다. 다음의 행복을 위한 “멈춤은 다시 걷게 하는/ 대단한 힘이 된다”라며 자기를 위로한다. 그 멈춤은 때로는 기쁨을 주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기기도 하지만, 그는 “머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이 빛나면 다른 한쪽은 그늘에 가려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삶의 리듬에 여백을 만들어주고 시간을 익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익어가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멈춤이라는 기다림은 그것 자체로도 빛이 난다. 그것은 , 기쁨도, 분노도, 사랑도 모두 품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이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더 단단케 된다. 그러니 그 멈춤의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관계는 삶의 희비가 갈리기도 하지만, 멈춰서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야 말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서로의 말을 다른 문화 코드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심해지면 서로는 이방인처럼 낯설어진다. 이때 멈춰서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정말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머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고/ 우리는 신나게 달리며
/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삶의 깊은 철학적 진술이 있어서 좋다. 시적 긴장감을 조이고 풀고, 비틀기와 뒤집기하는 과정의 호흡이 약간 짧다. 그리고 수미쌍관이 좀더 자면스럽고 명징하면 좋을 것 같다. 너가(X) ㅡ> 네가(O)로 수정해야 한다.
<이어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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