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짓다 / 손택수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 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 이름으로
[손택수 '눈꽃이 움직인다' 창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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