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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5. 12. 8. 06:18
토요 예술디카시 & 시 공부

오늘은 원종구 시인의 디카시와 송봉진 시인의 시를 텍스트로 감상하겠습니다.

밀담
카톡으로 나눌 수 없는 숨겨둔 이야기
대밭에서 소리치는
은밀한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원종구


풍자 시는 인생의 모순되고 불합리한 점을 날카롭게 비판, 폭로하는 시다. 위 디카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를 빌려와서 우리가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의 허점을 에둘러 비판하는 내용이다. 시대의 증언자이자 사회의 공기 역할도 시인의 한 가지 의무다. 건전한 비판은 민주주의와 사회 발전의 자양분이 된다. 그동안 우리 밴드는 시문학으로 소통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기에 정치, 종교적 내용은 배제하고 있다. 그러나 위 디카시 정도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학을 빙자한 바보들의 행진이 된다.

오늘의 디카시 ‘밀담’은 게오르규의 소설『25시』나, 조지오웰의『동물농장』처럼, “기계나 동물이 인간을 감시하고 지배하는 것 같은 세상이 오면 안 된다”라는 경고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모이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있다. 특히 시인은 가장 약한 존재인 것 같아도 가장 강한 펜의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시는 글로 표현하는 언어다. 언어는 파동이 있기 때문에 그 파동이 모이면 거대한 힘이 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경문왕의 이야기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Midas) 왕의 이야기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어떤 권력과 힘으로도 진실은 숨길 수 없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세력은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정치가 잘 못 되면 나라가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내 삶과 직,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정치인이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국민은 그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뇌는 원래 부정성 편향에 더 쏠리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건보다는 부정적인 사건을 더 오래 기억하고, 더 빠르게 퍼뜨리며, 더 강하게 반응한다. 정치인은 신이 아니다. 국민이 그들을 좋은 정치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금만 실수해도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서 물고 뜯는다. 이런 풍토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일류국가가 되기 힘들다. 나라 밖으로 나가보면 한국만큼 위대한 나라도 드물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역량과 위대함을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진짜 나쁜 정치인은 그런 위대한 나라를 한순간에 망쳐놓을 수도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안위나 이익을 위해선 나라가 거덜 나는 행동을 하면서도 온갖 구실로 혹세무민 하고 자기를 정당화한다. 그런 정치인은 나라의 시스템이 망가져 간다는 한탄 소리가 세상을 뒤덮는다 해도 꿋꿋하다. 힘이 너무 커서 그렇다. 국민이 행복하기 위해선 견제와 균형 속에서 협조 할 수 있도록 그 힘을 적절히 분산시켜야 하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백성을 최우선시하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지만, 정치인은 우리가 뽑는다. 그것이 선거다. 이때, 선거를 외면하거나 나라의 장래,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은 내일을 논할 자격도 없다.



회고


송봉진


기억 속에서 산다
내게 누구로 남아있는
그대로 인하여 행복해하며
천국에 산다

내 안에 머무는 그대
너로 인하여 고통 하며
지옥에 산다

되돌아보면 천국이던
기억 속에서 산다

천국일거라 설레었던
놀란 가슴
밀치고 뛰쳐나온 지옥

내가 붙들리고
너를 가둬둔
내 안의 지옥만 같은 천국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날이 갈수록 깊어만 지는
기억 속에서 산다


위 시는, 인간 실존의 불안을 ‘회고’라는 형식으로 고백하고 있는데, 사유의 깊이와 밀도가 있다. 신이 아닌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할 때마다 근본적 불안을 느끼는 존재다. 이 시를 쓴 송봉진 시인은 사회가 제대로 돌보지 않은 불우한 환경의 장애인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는 목사님이다. 종교적 신념과 봉사정신으로 하는 일이겠지만, 일반적 목회 생활이 아니라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정말 용기와 고통이 따른다. 처음에는 믿음의 열정과 천국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 길을 택했으리라. 그러나 목사님도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순정한 믿음과 사랑의 봉사가 왜곡되고 때로는 폄훼되기까지 하는 현실을 마주하면 지옥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내 안에 머무는 그대/ 너로 인하여 고통 하며/ 지옥에 산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목사님의 상황이 가슴 아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지옥에 산다고 했을까? 그러나 곧바로 “되돌아보면 천국이던/ 기억 속에서 산다"라며 첫 사랑과 믿음을 떠올리며 힘을 내다가도 "천국일 거라 설레었던/ 놀란 가슴/ 밀치고 뛰쳐나온 지옥”같은 현실에서 연약한 한 인간의 고뇌하는 기도가 들리는 듯 하다.

종교와 인간실존(Existence)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서로 대립하면서도 깊이 얽혀 있는 주제다. 인간은 종교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철학 속에서 그 믿음을 해석하며, 이 둘을 통해 삶의 의미를 완성해 간다. 우리는 믿음으로 서원(誓願)했을 첫사랑의 기억에 붙들려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한 사람을 저 시를 통하여 만나게 된다. 그는 “날이 갈수록 깊어만 지는/ 기억 속에서 산다”라고 한다. 그런 풀무불 같은 현실의 연단(鍊緞)을 통해 더욱 큰 믿음의 안으로 가게 한다. 군중은 SNS나 익명성에 숨어서 저런 고통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에게도 도발적 행동과 언사를 서슴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정의와 질서가 무너지고 가치관이 혼란스런 세상으로 변해가는 사회 병리현상이다.

오늘 위 시는 종교적이거나 신앙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실존적 인간의 깊은 고뇌에 관한 이야기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어찌 그 고통을 이해할까마는 그가 걸어온 길은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는 시인 송봉진 목사 같은 분이 존경받는 교계나 사회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런 사역을 하는 사람은 "당연한 일을 하고 있다"라며 무관심하고,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 큰 사찰, 동양 최고,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그런 곳의 지도자는 신을 밀쳐낸 자리에 오른 듯 떠받침을 받는다. 알게 모르게 간판과 물질만능주의가 신의 능력을 대신한다. 그러나 그런 암울한 현실에서도 낙심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치는 저 시 한 편이 나를 후려치는 회초리같이 아프다. 시인 송봉진 목사님이 독수리처럼 힘찬 비상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시를 소개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환난이 있으나 담대하라(요16:33)”라며 일으키시는 음성에 용기를 내시라고 기도하며 무릎을 꿇는 마음이다.

글_이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