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 / 문태준
누나의 작은 등에 업혀
빈 마당을 돌고 돌고 있었지
나는 세 살이나 되었을까
볕바른 흰 마당과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깰 때 들었던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
아마 서너살 무렵이었을 거야
지나는 곁에
내가 나를
처음으로 언뜻 본 때는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 창비, 2025)
[시의 눈]
누나라는 말, 그 어감은 다정함과 친근함의 정감을 깔고 있다. 누나의 작은 등은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정감의 원천은 따뜻함과 배려이다. 유년 기억의 공간을 주섬주섬 퍼즐로 맞춰갈 때, 마음 한 켠에 찐득하게 남아있는 누나와의 추억의 공간이 반긴다. 누나와의 추억의 조각, 그 부분을 채워야 흥분과 설렘 속에 살았던 한없이 그리운 기억의 퍼즐이 완성되곤 한다. 우리의 정서의 밑바닥에는 고단했지만 따뜻했던 유년을 되새김하는 아이콘 같은 노래가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이다. 왜 누나는 엄마와 동일시될까? 그만큼 엄마에 버금갈 만한 역할을 누나들이 해왔다. 그 이미지에 충실했던 누나들의 모자라지 않는 마음 씀씀이가 있었다. ‘버들잎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던/ 누나의 낮은 노래’, 이 대목은 ‘내가 나를 / 처음으로 언뜻 본 때’로 연결된다. 훗날 시인으로 이끈 누나의 나직한 노래야말로 어린 시절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지은 소중한 첫 기억이 됐다. 그것은 놀라운 내적 만남이자 첫 발걸음이었다.
<광주매일신문 윤삼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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