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계절 / 김추인
그냥 감기는 것
이때쯤이면
밀어내도 밀어내도 덧끼이는 때처럼
징그러운 뱀처럼
띠를 두르는 것
꽃댕기도 아니면서
결마다 테를 둘러
이랑이랑이 앙금지는
무성한 발자국 소리·소리·소리
가을 뜰을 보듯
새삼 바라보는 것 (후략)
- 김추인 '나이' 일부
애써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간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해서 똑같은 길이의 시간을 살아가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왜 가을이면 문득 나이 듦의 감각이 또렷해지는 걸까. 낙엽을 밟으며 발자국 소리가 들려서인지, 무성했던 세상이 점차 침묵으로 변해감을 느껴서인지 알 수 없다. 이제 곧 한 해가 간다. 가을은 이처럼 본원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서서히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 모두가 저물어간다는 분명한 사실을. 가을은 나의 본질을 헤아리게 되는, 어느 때보다 정직한 계절이다.
[매일경제신문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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