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방

<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비유의 힘, 직관의 힘

귀촌일기 박뫼사랑 2024. 9. 8. 06:37
<토요 강좌/시의 인문학> 비유의 힘, 직관의 힘

우리의 일상에서 비유는 널리 애용된다. “그 여자의 입술은 앵두지요”라고 했을 때, ‘입술’은 원관념‘이고, 비유로 가져온 ’앵두‘는 보조관념이다. 또한 “그의 행동은 총알같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시를 못 쓰는 사람과 잘 쓰는 사람의 문장에는 미세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면, 전자는 “앵두지요”라던가 “앵두 같지요”라는 직유로 문장을 마무리 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시를 잘 쓰는 사람은 “그의 입술은 앵두”라고 줄여서 표현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여운, 또는 다른 의미로 치환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데는 차이가 난다. 시인의 주장으로 끝내는 방법과,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차이다. 이처럼 시의 생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축약과 여운을 남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미세한 차이라도 시를 쓸 때마다 신경 쓸 일이다.

또한 비유는, 반드시 두 가지 대상을 결합하여 다른 의미의 확장을 가져오도록 하는 작법이며 시 짓기의 중심사상이기도 하므로, 자기만의 차별화된 비유를 할 수 있는 직관력(直觀力/intuition)을 기르는 연습을 자꾸 해 봐야 한다. 직관(直觀)이란 이성적인 인식과는 구별되며,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그것을 해석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비유는 시인의 독특한 직관 능력에 따라 그 시의 격(格)과 결이 달라진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修辭學)을 문어(文語)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시에서의 비유와 수사학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비유는 시의 확장성에 중요한 매개라면, 수사는 시를 꾸미는 역할을 하므로 묘사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현대시에서 수사를 잘못 사용하면 시의 깊은 맛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기가 써놓은 시에 수사가 많이 들어갔는지, 묘사만 해 놓고 진술에는 이르지는 못했는지를 잘 살펴볼 일이다. 묘사는 진술(시인의 직관으로 새롭게 해석한 철학적 개념)을 위해 존재하므로, "묘사는 시를 담는 그릇"이라면, "진술은 그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이다. 이때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자리바꿈을 통하여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비유의 중심에는 메타포(metaphor/은유隱喩)가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암유(暗喩/숨겨진 비유)다.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주로 보조관념을 간단하게 제시하는 방법이다. 은유는, 어떤 사물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다른 비유를 가져와서 말하는 표현법이다. 그러나 은유를 남용하면 시의 중심 문맥이 약해지거나 문장의 뜻이 모호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미 사용한 비유(은유)는 죽은 비유가 될 수 있다. 비유에는 참신성과 독창성이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 다른 말로는 유추(類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추론의 일종으로, 이미 드러난 사실에서 숨겨진 사실을 추측하는 생각이다. 논문처럼 어떤 사실을 논리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미루어 짐작하는 수법이다. 시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인생이 답이 없듯, 시도, 미루어 추측하는 형태를 취할 뿐 “이것이 정답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비유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비유를 겉핥기로 알고 있으면서도 가볍게 넘겨버릴 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시를 이루는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 공부는, 시적 대상에 시인의 독특한 시각으로 유추해내는 직관과 비유의 능력을 기르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선택한 대상에서 단번에 무엇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깊이 바라보고 또 보고, 말을 걸어봐서 그 대상이 대답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시에 다가가는 자세는, 비유와 유추, 직관의 능력을 기르는 지름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회원 디카시 한 편 감상

당신의 껍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하루의 껍질을 벗길 때마다
알싸하게 휘어감는 당신의 사랑

그 행복의 끝은 어디일까

자꾸만 눈물이 나요


_ 서목


오늘은 서목 시인의 디카시 ‘당신의 껍질’을 마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깊은 세레나데 인듯하다. 그 대상은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 디카시나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엇을 넣어도 시가 되기 때문이다. 확장성을 함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연이란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선택은 스스로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가치관에 따른 마음가짐이다. 선택을 잘한 인생은, 삶의 가치가 좋은 쪽으로 달라진다. 이럴 경우 상대를 알아갈수록 기쁨과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잘못된 선택은 서서히 늪에 빠져드는 것같은 고뇌를 맛보기도 한다.

성공적인 선택은, 간절하고 긍정의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한 걸음씩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그것을 서목 시인은 껍질을 벗기는 일이라고 한다 “하루의 껍질을 벗길 때마다/ 알싸하게 휘어 감는 당신의 사랑”이란 시적 표현은, 앙파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사랑과 행복의 노래다. 그는 지금 행복에 젖어있다. 그 행복은 ‘눈물’이 나도록 감사한 일이라고 한다.

이 디카시는 '양파'라는 원관념을 가져와서 사랑의 정의를 보조관념에 담아냄으로써 사진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의미로 조응하는 디카시의 맛을 잘 우러내고 있다. 사진의 선택과 집중도 괜찮다. 만약 양파 주변의 풍광까지 풀샷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이 시는 실패했을 것이다, 양파 외의 대상에 특별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한, 다른 사물의 등장은 사족이자 진술의 기둥을 약하게 하는 쪽으로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_ 이어산 시인 -



728x90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그늘 / 이상국  (0) 2024.09.09
병원 / 윤동주  (0) 2024.09.09
사랑한다 / 정호승  (0) 2024.09.05
<토요강좌/시의 인문학 > 가려진 진실을 찾아서  (1) 2024.09.02
초이스안경점 / 심여혜  (0) 202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