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봄에 가장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나는 봄에 압도적인 공부를 하는 신입생이 된다. 나무들이 본격적으로 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물은 겨울 한기가 녹으면서 생기는 물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봄이 분출해내는 자장의 힘이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기운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음을 배운다.
박노해 시인의 ‘공짜론’은 봄이어서 셈이 가능한 ‘계산법’이다. 계산이 아주 잘된 보고서다. 세상에서 좋은 것들과 빛나는 모든 것들이 다 공짜라는 시선은 우리는 누구나 부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꽃이 그렇고 하늘빛이 그렇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렇듯이 우리에게 이 봄은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도 가르친다.
벚꽃이 다 지고 어린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벚나무 아래에서 어린 연인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벚꽃이 피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나 봐.” 안타깝게도 시절에 지각한 연인들은 공짜 벚꽃을 놓치고 말았다. 기다림도 공짜니 그냥 기다리라고 내버려둬야 하나.
그러고 보니 이 봄에 먼저 피는 꽃들은 하나같이 꽃이 먼저다. 꽃이 피고 나서 지고 나면 잎이 돋는다. 개나리·목련·벚꽃·진달래. 그 이유는 무엇일까. 봄이 왔으니 서둘러 공짜를 잡으라는 신호 같다. ‘공짜니까 그냥 가져가세요’라고 써놓은 누군가의 착한 손글씨처럼 도드라진다. 세상의 모든 공짜를 만나러 어딘가에 접어둔 돗자리를 들고 나서야 할 것 같다.
나는 요즘 매일 봄의 학교로 출근한다. 출근길에 저 도서관에는 얼마나 많은 책들이 공짜인가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퇴근길에 이 저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표정들이 공짜인가를 즐긴다.

[농민신문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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