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 이태정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만 가득하다
그렇다고 설겅설겅 삼키면 체하는
오늘도 꼭꼭 씹어서
잘 먹어야 소화되는
(시조집 ‘빈집’, 책만드는집, 2022)
[시의 눈]
‘깎으면 깎을수록 커지는 게 뭐냐’는 수수께끼가 있었지요. 뭘까, 망설이는데 ‘구멍’이라고 친구가 일러주던 그 하굣길이었습니다. 그때 나 깨달았지요. 구멍이 되어야겠다. 해서, 남 보이지 않은 곳에 책을 쌓아 숨을 곳을 만들었더랬습니다. 그 구멍, 오래 지나와 이제 늘그막입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진 기운이 더 느껴진다는 걸 이 시를 보고 알지요. 뭔가 가득 찼지만 이제 생은 빈집처럼 맹랑합니다. 뭐, 하냥 세월 ‘꼭꼭 씹’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이지요. 제 먹은 나이를 ‘체’하지 않고 소화해 내려면, 의사의 말을 잘 새겨듣고, 때를 찾아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꼬박꼬박 먹어야 할 건 약이네요. 그래, 잘 보이도록 약상자를 식탁 오른쪽에 놓아둡니다. 신선한 봄날 아침입니다. 마셔야 할 공기 대신 약을 털어 넣고 기지개를 켭니다. 아마 이 봄이 가면 알약은 허기 달래려 더 늘겠지요. 허참, 뜻하지 않은 약의 기갈증이라니요? 이태정 시인은 2002년 ‘유심’ 신인상과 2012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편에 서 있는 듯하지만 따뜻하고 의로운 시를 쓰는 시인이지요.
<광주매일신문 노창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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